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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族正體性을 지키기 위한 이란의 투쟁, 世界史에 刻印될 것
  • 朴京範 소설가/철학수필가
  • 등록 2026-05-10 14:28:18
  • 수정 2026-05-10 14:39:39

유선방송으로 이란 영화 〈나히드가 사는 법〉(한국제목)을 보았다. 무능한 남편을 쫓아내고 장애인포함 두 아이를 혼자 기르는 여자 운전사가 연쇄살인마가 되는 특이한 소재이지만 이란의 일반적인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소파에서 탁자건너의 텔레비를 보는 것은 유사하나 식사를 바닥에서 하는 것이 異彩로웠다.

그 외 주차장에서의 접촉사고 시비 등 모든 생활양상이 우리와 다른 異常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신선하게(?) 와 닿았다. 딸아이의 학교에서의 태권도 수업도 그렇고 비록 우리고유의 풍습은 아니지만 인사말이 우리가 때때로 자주 듣는 ‘샬롬’이라는 것도 더욱 다가왔다.

그런데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러한 인간적인 생활상이 평화롭게 이어가면 좋겠는데 지금 그곳은 전쟁이 한창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웬만하면 국민대중을 위해 조금 자존심을 줄이고 親美를 해도 좋을 걸 그렇지 않느냐고 많은 건전한 생활인은 생각할 만하다.

필자 또한 그리 다르지 않았으나 유튜브의 시사토론에서 미국으로서는 이란이 친미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국가를 분열 解體시켜 이란이 중동의 중심국가로 자리 잡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원하는 바라는 평론가의 설명으로 理解가 되었다. 이란의 주축민족인 페르샤민족을 해체하고 쿠르드족 등 상대적 소수민족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세력형성을 하여 분열시키자는 것 등이다.

설마 親美友邦이 되었는데도 미국이 국가분열을 원하겠느냐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방인 한국에 對한 ‘민주화 영향력’에서도 나타난다. 大韓民國의 역사에서 비록 최고 집권자는 바뀌어도 오십년을 국가의 중심이자 주류세력으로 자리잡아온 기존의 ‘친미’ 보수세력이 민족주의적 基調를 유지하며 冷戰解除 후 대륙과의 역사적 관계의 회복을 해나가자, 한국의 정치세력은 대륙 非漢字文化圈 指向의 속칭 진보좌파 정치세력과 脫歷史 脫傳統 祖上否定의 가치관을 가진 海洋 指向의 속칭 보수우파 정치세력으로 절반으로 나뉘어 兩 끝에 위치한 파벌 極端 소수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갖도록 바뀐 것이다. 여진족과 토착왜구로 대표되는 兩極端 세력이 極限 집권경쟁을 하되 기존의 主流 韓民族의 민족정체성 소멸에는 兩 세력이 共히 발맞추고 있는 결과를 보면 설명된다.

필자는 세계 각지의 문화는 존중되고 나름대로 발전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수년전 연설을 보고 미국에서의 그의 집권을 상대적으로 선호했던 자들 중 하나였다. 많은 세계인도 그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먼 곳에의 관심을 접고 자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우선할 것으로 믿고 그가 집권하면 세계는 더 평안해 질 것으로 기대했던 바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국내에나 국외에나, 그의 인간성의 不良함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警告했던 時代의 賢人은, 있었다고 해도 많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란이 미국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면 或者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례는 越南에서 먼저 있었던 일이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주축 민족의 전통문화에 대항하는 공산당 즉 기존 소수세력의 승리였을 뿐이다. 월남이 민족정체성을 잃고 알파벳문화로 바뀐 것에 관해서는 한국도 以五十步笑百步의 格이기도 하지만 한국은 정말로 오십보만 후퇴한 것으로서 자기네 문화재와 寺刹의 현판을 읽지 못하는 국민은 한국에서는 절반이겠지만 월남에서 절대다수라고 한다. 이는 19세기 일본처럼 脫亞入歐의 의도였지만 결과는 脫韓中日하여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권역으로 위상을 굳히는 결과일 뿐이었다. 이란의 ‘미국에 對한 승리’가 있다면 이는 패권국의 공격에 맞서 저네 민족의 정체성을 지킨 드문 사례로서 ‘월남의 승전’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人類史의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다. 

이란이 回敎혁명을 했다고 해서 수천년 역사를 기록하며 써온 자기네 글의 폐지억압정책을 행하기를 했나 자기네 글쓰기의 오른쪽부터쓰기가 영어와의 혼용이 불편하다고 왼쪽부터로 바꾸기라도 했나 언어의 발음을 다수의 편의가 아닌 소수의 명분에 맞춰 억지표준을 강요했나. 오히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회교혁명 이전의 ‘서구화된’ 정권에 국가의 문화를 해체하는 영향력이 있었을 것임이 우리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짐작이 간다.

‘국가와 민족’을 지키자는 가치관이 지극히 세속적인 생활인에게는 그래도 납득이 어렵겠지만 고유의 민족정체성을 소멸하고 애매모호한 정체성의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탄생과 인생의 목적을 무색하게 한다. 더 쉽게 설명하면 ‘국가와 민족’을 잃어 자신의 탄생정체성과 다른 언어와 생활방식을 강요받게 되면 國民全般은 自身과 환경의 불일치로 생겨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불안이 심화되어 幸福度가 낮아지고 이는 높은 自殺率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이나 국가나 ‘삶의 원만함’을 위한 융통성도 좋지만 그것은 그대로 그 존재의 정신건강 그리고 존재목적의 실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모든 것에는 代價가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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