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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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의 한 선배 교수가 도서관과 그 안에 비치된 책들에 관한 다소 애잔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요즘은 워낙 종이책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다 보니 정년 퇴직한 교수들이 오랜 연구 생활을 하면서 한권 두권 씩 모으면서 손때를 뭍힌 책들을 여간해서는 들이지 않고 있다. 그 많은 책들을 집으로 들이려고 하면 공간도 없을 뿐더러 안사람이 질색을 한다. 결국 학자가 오랫 동안 아끼며 연구해왔던 책들이 무더기로 아파트 분리 수거장으로 폐기되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다른 책들도 아니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연구서들이 그렇게 처분된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라 할 수 있다. 엄선하고 엄별해서 취사 선택하면 좋으련만 안목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저 부담스러운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한겨레 신문에서 인용)
나에게도 도서관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 오래 전 내가 국민대에 출강을 할 때다. 그 당시 나는 작고한 최종욱 교수와 친해서 그이의 방에 가끔씩 놀러간 적이 있다. 그때 최교수의 방에는 한국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수많은 원서들이 연구실 벽 천정 가까이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대학원 시절 만난 최교수는 독일 보쿰대에서 딜타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이는 해석학자 답게 다양한 문헌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데다 현실 변혁 운동에도 관심이 깊은 맑스주의자이기도 했다. 귀국한 후 글도 많이 쓰고 여러 운동 단체에 관여하면서 열정적으로 활동도 했다. 그런데 신장이 좋지 않아서 애를 많이 먹었는데, 결국 2001년에 서거했고, 그이의 수많은 책들은 연세대 도서관에 기증되었다. 국내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책들의 가치도 있었고, 그 당시만 해도 종이책에 대한 거부감이 덜할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도 나중에 대학에 복귀했을 때 학위 논문을 쓰면서 그이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여럿 참조한 기억이 있다.
내가 최교수와 어울려 다니던 때에 J. 이폴리트의 <정신현상학> 주석서 번역본을 기증한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워낙 운동권의 기세가 등등해서 증정하는 글을 쓸 때도 분단 몇년 등을 적기도 했다. 그런데 그 책을 오스트리아에서 니체로 학위를 받은 후배 홍모 박사가 빌려 보았는데 그 앞에 내가 적은 증정 글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홍모 박사도 신기하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알려 주었고, 나도 그 책에 담긴 히스토리와 죽은 그이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최교수가 만일 살아서 계속 글을 썼다고 하면 한국의 사회 철학계도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이는 철학 논쟁을 할 때도 익명으로 두리 뭉실하게 비판하지 않고 반드시 실명 비판을 했다. 지금도 구글로 검색해보면 그런 논쟁적인 글들이 올라와 있다. 그이가 죽은 지 햇수로 벌써 23년이 흘렀는데 오히려 철학계의 논쟁은 한참을 후퇴해버렸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쓰고 호탕하게 이야기하던 그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