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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보단 밀로세비치(Слободан Милошевић)와 유고슬라비아의 붕괴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5-18 22:27:43

슬로보단 밀로세비치(Слободан Милошевић)는 세르비아 인들의 감정에 불을 지피는 방식으로 반관료 혁명이라 하는 시위를 조직해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보이보디나 지역의 고위층들을 친밀로셰비치파 인사들로 교체했다. 그리고 그는 1988년에는 아예 1974년에 요시프 티토가 제정한 유고슬라비아 헌법을 무시하며 위헌적으로 헌법을 개정했다. 특히 코소보와 보이보디나 지역에서 알바니아계와 헝가리계 주도의 소요 사태가 일어나자 이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두 주의 자치권들을 박탈하여 타 공화국들이 반발했는데, 이 와중에 유고슬라비아 연방 주석 직함을 신설하려 들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Милошевић и Стамболић на 10 конгресу СК Србије, маја 1986. 출처 : Википедије, Слободан Милошевић


특히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총선에서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이 정권을 상실하게 되면서 정권 위기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 출신 인사들이 슬로베니아 사회당, 세르비아 사회당, 몬테네그로 사회당 등을 결성하여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크로아티아는 1990년 5월 총선에서 프라뇨 투지만의 민주 크로아티아당이 63%를 차지하여 정권 교체가 일어나면서 유고 연방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1990년 10월 총선에서 이란과 같은 시아파 이슬람 공화국을 건국하겠다는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Alija Izetbegović, 1925~2003)의 민주행동당 35%, 라도반 카라지치(Радован Караџић) 이끄는 세르비아 민주당이 30%, 크로아티아 투지만의 지원을 받은 크로아티아 자유당이 25%를 차지했다.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은 고작 11% 득표로 처참하게 몰락했다. 보스니아는 이후 보스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들이 서로간 정권을 쟁취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연립정부 수립을 거부했고 이로써 유고슬라비아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었다. 결국 대립이 고조되어 가던 1991년 6월 25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6개 공화국 중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탈퇴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써 티토주의를 배경을 한 연방이 되었던 국가들이 각자 독립을 선포하게 되면서 베오그라드는 이를 반역(Издаја)이라 규정하고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을 반역자로 간주하여 그를 체포할 것으로 명령했다. 베오그라드 정부군이 때마침 오시에크에 머물고 있곤 투지만 체포하려 출발했고 이는 곧 내전으로 승화되었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는 투지만의 독립을 지지하고 크로아티아에 대한 막대한 원조를 천명했다. 그렇다면 밀로세비치가 믿을 수 있는 국가는 소련이었다. 그러나 소련도 내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라 유고슬라비아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자 다른 유고 연방의 국가들도 연방 이탈을 심각히 고려하게 되면서 유고슬라비아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유고 연방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던 세르비아는 탈퇴하려는 국가들에게 무력 진압을 결정했고, 이로 인해 세르비아 중심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이 수도 자그레브로 진격함으로 인해 전쟁이 터지게 된다. 


한편 유고슬라비아와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군의 전쟁이 치열해져 가던 1991년 9월에는 마침내 남부의 마케도니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여 유고슬라비아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이듬해인 1992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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