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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 대공국 시대 : 이반 3세와 이반 4세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03 13:31:23

모스크바 대공국 시대를 생각해본다. 사실 대공국 시대의 전성기는 이반 3세와 이반 4세 시기이다. 이전 7세기 무렵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러시아 영토 내에는 많은 민족들이 존재하여 교류와 전쟁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 슬라브 족은 8세기경 현재의 키예프 지역으로 이주했으며, 볼가 강과 드네프르 강 일대에 정착해 거주하며 투르크계 유목 민족들과 경쟁했다. 

Рост территории Московского княжества, 출처 : Википедии, Великое княжество Московское

9세기에 이들 슬라브 종족들은 북쪽 발트 해 지역에서 들어온 노르만 계통의 바랑기아 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바랑기아의 일파인 민족과 훈족의 후예인 루스(Rus)의 후예들은 바랑기아 족의 족장인 류리크(Ryurik)를 왕으로 맞아들여 862년에 북쪽의 노브고로드에 루스 공국을 건국했다는 것이 현재 러시아의 건국사이다. 루스라는 단어에서 러시아의 어원이 생성되었으며 결국 훈족과 노르만의 혼혈이 오늘날 러시아인의 시초가 되었다. 


류리크의 동생들인 시네우스(Sineus)와 트루보르(Truvor)도 볼가 강과 드네프르 강 일대에서 새로운 도시를 세웠으며, 남쪽에서는 류리크의 친척인 올레그(Oleg)가 880년에 키예프를 건국했다. 키예프는 공국으로 성장하여 노브고로드 등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발트 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으나, 11세기부터 서서히 분열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기 초, 칭기즈칸(Chingiz Khan)의 손자인 바투(Batu)의 서방원정으로 인하여 키예프 공국을 멸망시키면서 러시아는 약 240년 동안 몽골 킵차크 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킵차크 칸국의 지배 하에서 독립의 가능성을 가졌던 나라는 모스크바 공국이었는데, 당시 모스크바 대공후인 이반 3세(Ivan III) 시기에 마침내 몽골을 1480년 결정적으로 축출하게 된다. 이반 3세는 비잔틴 제국 황제의 조카딸과 혼인함으로 인해 자신의 비잔틴의 후계자를 주장하여 권위를 높였는데 비잔틴 제국이 1453년에 멸망한 이후로는 모스크바 대공국이 콘스탄티노플을 계승하는 ‘제3의 로마’라는 주장을 하며 콘스탄티노플 정교회의 수장을 자처하고, 비잔틴 제국의 문장인 ‘쌍두의 독수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로마의 계승자로써 국가 뿐 아니라 왕권을 더욱 높이려 했다. 


그래서 그를 로마 황제인 카이사르의 칭호를 러시아식으로 지칭한 ‘차르’라고 부르게 되었다. 또한 노브고로드를 비롯한 여러 공국 등을 병합하고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러나 모스크바 대공과 공국의 지배력은 완전하지 않았다. 이른바 보야르(Боярин)라 불리는 대 귀족들은 국가 기구를 완전히 장악한 한편 세습으로 이어진 대토지를 보유했으며, 서유럽의 봉건 영주들과 달리 공후에게서 봉토를 받고 충성 서약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군주의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했다. 


병합된 옛 공국들도 명목상으로만 모스크바에 복종하는 경우가 많았고, 늘 반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스크바의 위치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강력한 통치가 필요했다. 그러한 배경으로 명실상부한 차르 전제 체제를 수립한 군주는 이반 3세의 손자인 이반 4세(Ivan IV, 1530~ 158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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