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다수를 이루는 5세, 6세는 더이상 한국어를 쓰지 않고 러시아어나 현지어를 쓰고 있다. 그 때문에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우리말로 쓴 문학작품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은 민족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책이 최근에 나왔다. 고려인들이 쓴 시 46편, 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 5편 등 모두 57편을 수록하고 관련 논문을 곁들였다.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월곡 고려인 문화관 '결'에서 보존 및 전시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역사적인 문학 유산(고서적),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강제이주 전 연해주에서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를 사사하면서 우리말 신문 <선봉>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그는 강제이주 직후인 1938년 카자흐스탄 키질로르다 사범대학 벽보에 실은 시가 문제되어 시베리아 원시림에서 22년 동안 사회와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 그의 소설 <그날과 그날 밤>은 바로 그 원시림 생활에서 돌아온 인물을 주인공 삼아 스승 조명희와 조선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연해주 시절을 그리움 속에 회고하는 내용이다.
구소련 지역 고려인들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제 시작되었는데 연구 대상은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이라며 다른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화권보다 이 지역의 문화와 문학이 그 연구 및 자료의 발굴에 있어 시급성을 다투는 과제가 되는 형국이라고 하였다. 고려인 문학 다수는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총 23권이 지정되어 있다. 게다가 원고지의 한글을 읽어보노라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과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건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금까지 고려인을 연구한 학자들의 전반적인 견해는 전 세계의 한민족 가운데 CIS의 한인 즉, ‘고려사람’은 전 세계의 한인들 중에서도 현지사회에 가장 동화된 사람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그들이 민족어를 거의 상실하면서 자치지역을 지니지 못하고 분산된 민족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소비에트의 러시아어 동화 정책, 그리고 1937년에 실행되었던 강제 이주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런데 소련의 붕괴와 독립 국가들의 등장이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을 일깨움으로써 고려인 사회에 변화를 일으킨 요인이 되었다. 고려인의 민족문화와 언어의 재생에 있어서 급성장을 일으키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구소련 국가들의 민족정책과 한국 간의 우호적인 외교관계라는 점이다.
첫째, 구소련 국가들의 언어와 교육, 문화 정책에의 고려인 전통문화발전에 대한 기여도에 대해서 고려인들이 느끼는 반응은 제법 긍정적이고 러시아어의 공용화 정책이 그들의 민족문화발전 및 보존에 방해하지 않았다.
둘째, 고려인 정체성의 객관적 특성에 대한 질문 결과,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모국어로 한국어를 생각하고 있으나 가정에서는 절대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고 한국어 구사능력 수준도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민족문화 보존에 있어 그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였다. 고려인 정체성의 주관적 특성 가운데 심리적 동일성, 고려인들에 대한 동포애, 지속성에 관한 조사결과가 대체로 긍정적으로 나타났으나 독자성 및 한국인들에 대한 동포애에 관한 결과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셋째, 고려인들의 민족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는 구소련 국가들과 한국 간의 외교관계와 그에 따른 고려인들에 대한 구소련 국가들의 민족정책을 꼽았다. 즉 한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민족정책, 즉 고려인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을 이끌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고려인의 민족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구소련 정부들의 다민족문화 포용정책과 한국과의 수교는 고려인들의 민족문화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부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한민족 의식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개방 이후, 초창기의 한국어 책부터 한국어 공부, 그리고 러시아화 된 것에서 고려인의 독창적인 면을 찾기 위해 문화와 역사를 공부했고 그 흔적은 우리 정부의 어느 정도 지원 사업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