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자연재해, 상상을 초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83107490005641?dtypecode=pancode_main네팔·티베트 대홍수 사망 797명·실종 3048명…터널 구조 사력입력 2026.08.31 07:54한국일보를 선호 출처로 추가김현우 기자네팔, 수력발전소에서 집중 구조작업미국·캐나다 등 긴급 자금 지원이미지 확대보기29일 네팔 홍수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누와코트 지역 비...

케루악: 사진은 경향신문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래 전 내가 <서울 가는 길> 연재를 마치니까 한 친구가 케루악의 <길 위에서>라는 작품을 연상시킨다고 댓글을 단 적이 있었다. 잘 알다시피 이 책은 미국의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케루악이 젊은 시절 겪은 방황과 도전을 담은 책이다. "억압되고 모순된 사회에서 모범생이 되느니 아웃사이더가 되고 말겠다"는 케루악은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 그야말로 교과서 밖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 어드벤쳐를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길(道, way, Weg, voie)이 주는 표상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상되는 길에서부터 궁극의 지혜와 존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길이 있지만, 일종의 깨달음을 구하는 방법으로서의 길이나 그것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도(道)의 의미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8정도(八正道: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8가지 올바른 방법으로서의 길이다. 반면 노자가 말하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나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도(道)는 일종의 궁극적인 진리를 말한다. 서양식으로 말하면 만물의 근원이고, 절대자이고, 신이다. 유가의 경전이라 할 <대학>에도 큰 배움의 길(大學之道)은 在明明德(재명명덕)에 있고, 밝은 덕을 널리 밝히려는 자는(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는 먼저 수신과 정심을 하고, 궁극에는 致知在格物을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즉 배움의 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앎을 바로 세워야 하고, 이 앎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결국 큰 앎의 길은 수신이자 격물에 있다 할 것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우리의 삶 자체는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길을 걸으면서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겪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겪어 나가면서 사람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고, 또 궁극의 깨달음을 위한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Aporia (ἀπορία)는 ἄ(부정 접두사)+πορος(다리, 길)로 길이 없다, 즉 난제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더 나아갈 길이 없다는 것, 길이 끊어진 곳에서 새로운 길도 보이지 않는 곳에 서면 당황하고 당혹해 할 수밖에 없다. 산다는 것은 이런 난제를 풀어가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반면 장자는 자기가 걷고 찾는 길이 곧 자신의 길을 만든다는 의미로 생각한다. 장자가 말하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은 걷다 보면 그것이 길이 된다는 의미다. 예수는 보다 직접 화법을 통해 자신이 곧 길임을 밝힌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대도무문(大道無門)
大道無門 千差有路(대도무문 천차유로)
큰 길에는 문이 없으나 갈래길이 천이로다
透得此關 乾坤獨步(투득차관 건곤독보)
이 빗장을 뚫고 나가면 하늘과 땅에 홀로 걸으리(송나라 선승 혜개가 수행의 이치를 담은 화두를 모은 책 ‘무문관’에서 비롯된 것)
길이 가지고 있는 이런 다양한 이미지나 은유를 동서 고금의 다양한 철학자와 사상을 여러 회에 걸쳐서 한 번 고찰해보고자 한다.
먼저 가수 박 인희의 <끝이 없는 길>이란 가사를 보자.
"길가의 가로수 옷을 벗으면
떨어지는 잎새 위에 어리는 얼굴
그 모습 보려고 가까이 가 - 면
나를 두고 저만큼 또 멀어지네
아 - 이 길은 끝이 없는 길
계절이 다가도록 걸어 가는 길"
유행가 가사 지만 한 편의 아름다운 시나 다름 없다. 가로수 잎에 어린 얼굴을 가까이 다가서 보려고 하면 그 얼굴은 저만큼 멀어진다. 때문에 시인은 그 얼굴과 만나는 길이 끝이 없는 길이라고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만큼 힘들고 노력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려 한 것인가? 혹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해도 진실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을 알기가 힘들다. 삶을 사는 동안 우리는 무수히 사람을 만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있던 길도 막힐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할 터인데 그런 사람은 가까이 가면 갈 수록 멀어지기 때문에 만나기가 힘들다. 반면 나쁜 사람은 내가 원치 않아도 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교과서에도 나와 있어 잘 알려진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선택으로서의 길을 표상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은 우리의 삶을 다르게 결정할 수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옮김)
여행도 그렇지만 큰 의미에서 인생도 선택이다. 우리가 모든 길을 갈 수 없다. 우리는 앞에 놓인 갈래 길에서 다른 길을 포기하고 한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훨씬 나중에 되돌아 볼 때 그 선택의 차이는 클 수도 있다. 시인은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던 길, 잘 닦여진 길보다 남들의 발길이 적었던 새로운 길을 택한다. 무릇 모험을 좋아하고 창의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것은 이미 잘 닦여진 길을 가는 것보다 배 이상으로 힘들 수 있고, 애쓴 만큼 성과가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훨씬 클 수도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이미 다른 사람이 적게 간 길을 선택했는데,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성과가 적으면 그런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할 것이고, 그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후회나 자랑이나 모두 과거의 시간에 사로 잡힐 뿐이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선택을 위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결과는 그 다음의 일이다. 오래 전 나에게도 그런 선택의 길이 주어진 적이 있었다. 만일 내가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