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트비아의 리예파야 카로스타 군항,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발트해 바다. 라트비아 리예파야 해변에 왔다. 비록 카로스타 군항은 현 라트비아 해군 군항이 되어 들어가지 못하지만 발틱함대가 출발하는 상상을 해봤다. 1904년 러시아군 사령관 크로파토킨은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40일이 지난 뒤에야 현지에 나타난다. 그 자신의 판단으로도 러시아 극동군의 전력은 대규모 회전을 치르기에 미비한 상태였으므로 객관적인 전력상의 우세를 점한 일본군과 정면 대결을 벌일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서부 러시아에서 지원이 오려면 무려 40일이 넘게 걸렸기 때문에 일본군을 내륙 깊숙이 유인해서 섬멸하자는 전략을 택한다. 하지만 일본 역시 인적, 물적 자원의 소모가 극심한 근대식 대규모 회전을 치러본 경험이 없어 몇 차례의 전투 후 본인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그동안 벌인 전쟁들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 규모에 객관적인 국력의 현저한 열세로 인해 어떻게든 한번에 제대로 러시아군에 타격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크로파토킨이 의도한 장기전에 따라 러시아군은 매 전투마다 조금 불리해진다 싶으면 주저없이 철수했고, 봉천 전투 등에서 일본군은 러시아군을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서 그저 부분적으로 타격을 가해 후퇴시키기만 했다.이러는 동안 일본 국내에서 점차 경제적 압박이 심해지고 있었고 여기에 일본군의 무능한 지휘력이 문제가 되었다. 앞선 청일전쟁은 청나라가 워낙 무능했기 때문이었지만 러시아 로마노프 제국은 청나라와 분명 다른 상대였다.
게다가 가장 유능했던 스테판 마카로프 제독이 부임하여 몇 차례의 해전에서 승리했으며 강직하고 훌륭한 지휘관의 실력을 보여주었으나, 미처 러시아 해군이 집결하기 전에 실수로 기뢰가 폭발하여 기함과 함께 전사하였기 때문에 해상을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다. 일본 역시 기뢰로 구축함 하츠세, 야시마에 순양함 요시노, 수뢰정 아카츠키, 포함 오시마가 전사했으나 마카로프 제독의 전사를 지켜본 러시아 해군 장교들의 행동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고, 만주로 진군해 러시아 군을 압박했다. 여순 공방전 이후, 1905년 여순을 내주고, 봉천전투에서의 패전으로 인하여 패색이 짙어지던 러시아는 국내외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가자 결국 마지막 승부수로 발틱함대의 출진을 결정하게 된다. 이곳 라트비 카로스타에서 출발한 발틱함대는 영국이 수에즈 운하의 통과를 허가하지 않아 결국 대서양과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동중국해로 거슬러 올라왔고 결국 대마도 해전에서 일본과 러시아는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끌고 온 발틱 함대는 일본 함대에게 전멸되었고, 결국 러시아는 미국의 중재로 일본과 포츠머스 협정을 맺으며 전쟁을 끝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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