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말레이 반도 남쪽의 말라카 해협이나 순다 해협 상에 항구 도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구,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신석기 후기 때부터 나타나고 있지만, 말레이 반도 남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반도의 중북부에 위치한 크라(Khra) 지협을 통과하는 경우도 빈번했으니 이 해협을 통제하며 부상한 나라들도 많았다. 지금은 태국 남부로 편입되어 있는 파타니(Patani)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랑카수카(Lankasuka)나 그보다 말레이 반도 북쪽에 위치했던 탐브라링가(Tambralinga) 등이다. 기원후 약 2세기경부터 출현한 말레이 반도와 대순다, 소순다 열도에서의 국가가 존재했던 기록은 말레이 반도에서 발견되는 각종의 비문들로부터 확인되고, 중국 기록에 각각 능아사가(凌牙斯加)와 단마령(單馬令) 등의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다채로운 향신료(Spices)들을 금속 그릇에 소복하게 담아 전시해 둔 전통 시장의 가판대, 출처 : iStock
항해의 중심지, 종교 전파의 장, 동서의 인적, 물적 접촉 등의 기능을 하던 다양한 도서부 동남아시아 지역들이 하나의 거대한 세력 하에 통합되고 인적, 물적 교환의 중심지가 한 군데로 집중되는 것은 대륙 부 동남아시아의 부남이 6세기 들어 현저하게 세력이 약해지면서부터였다. 부남은 약화되었지만 중국에서 당나라가 성립되고 개방적인 교역을 장려하면서 동서 교역은 더욱 활발해졌다. 이러한 형편에서 부남의 역할을 대신하며 7세기부터 크게 발전하던 나라가 스리위자야였다. 스리위자야는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많이 알려진 것이 자단목(紫檀木)의 재배지였고 이 나무가 중국과 동북아시아에 유행이었는데 자단목(紫檀木)은 태우면 특이한 향을 내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자단목(紫檀木)은 아열대에서 자라는 상록교목(常綠喬木)으로 재질이 아주 단단하고 색깔이 적색이며, 나무 조각을 물에 담그면 금방 가라앉는다. 청룡목(靑龍木)이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는 최고급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며 향이 좋아 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자단목은 인도나 동남아,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데, 불상이나 고급 가구, 공예품의 원자재다. 여기에는 한자 부호나 숫자, 혹은 아라비아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국제 상인들이 원산지를 드나들며 남긴 흔적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각종 향신료들이 재배되거나 거래되었는데 후추, 단향, 유향, 여지, 은행, 복숭아, 인삼, 사군자, 계피, 개암, 약밤, 산수유, 빈랑 등이 재배되거나 거래되었다. 이러한 상선들은 중국 광주를 떠나 해로로 인도 촐라 왕조까지 연결되어 들어가서 거래되었으며 7세기에는 10여 년 간 상선들을 보호하는 오늘 날 해군 경찰과 같은 수사 함선도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후 상선들을 보호하는 수사 함선과 기관이 사라지고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는 함선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는 승려 의정이 25년간 스리위자야에 머물면서 저술한『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에 중개 무역 국가로써 스리위자야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도 기록으로 남겼던 것으로 나타난다.
의정은 중국으로 돌아온 이후『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이라는 책도 저술했다. 메꿀렁의 역사는 서기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메꿀렁은 스리위자야 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스리위자야는 말레이 지역에서 강력한 제해권을 가졌던 도시 국가로부터 출발했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비문이나 당나라 의정의 여행기『남해기귀내법전(南海奇歸內法傳)』으로 스리위자야 왕국이 당시 중국 당나라나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신라, 현재 제주도인 탐라 그리고 인도와 활발한 교역활동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을 잇는 항로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으며 말라카 해협과 순다 해협의 중앙이라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었기 때문에 8세기에 접어들어 해상무역국가로 빠르게 발전했다. 때마침 서방의 이슬람 제국에서 상선이 자주 동쪽으로 무역을 하기 위해 교역지를 찾아다니던 시기이다.
게다가 당나라 시대의 중국도 말라카와 순다 열도의 풍부한 시장성을 노려 당나라도 해상 실크로드로 진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스리위자야는 중개 무역지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671~695년 시기 인도에 유학했던 당나라 승려 의정이 도중에 스리위자야에 들러 산스크리트어 연구와 불경번역 등으로 주력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스리위자야의 종교인 불교가 매우 융성함을 알 수 있다. 8세기 중엽에는 말레이 반도의 일부도 지배했던 것으로 보이며 영토도 크게 확대되어 동남아시아에서 해상과 육지를 접수한 유일의 대국이 되었다. 10세기를 최전성기로 하였으며 그 뒤 외부 세력의 침입과 내란으로 인해 쇠퇴해 14세기에 몰락했다. 중국 기록 중『신당서(新唐書)』나 『송사(宋史)』등 스리위자야의 전성기에 중국에 교역을 위해 존재하던 국가들의 역사를 다룬 서적에서도 스리비자야는 삼불제(三佛齊), 실리불서(室利佛逝) 등으로 표기되어 중국 동남해안 지역과의 내왕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 체제라든가 사회, 문화, 심지어 위치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매우 모호한 편이다. 당시 무역 항로 중에서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 준 바닷길은 인도와 중국, 동남아시아를 왕래하는 항로였다. 그로 인해 후추는 유럽에서 매우 고가에 팔리게 되었고 중국에서 유출되는 차와 도자기도 역시 매우 비싸게 팔렸다. 중세 이후 유럽의 이런 아시아 무역은 베네치아 상인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 베네치아 상인들을 중세 무역에 있어 가장 부유한 집단으로 만들어 놓은 부분은 항구로써 좋은 입지 조건, 그리고 뛰어난 수공업과 상업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당시에 아무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무슬림들과 관계를 맺는 파격성 등을 들 수 있다. 그러한 덕택으로 레반트 지역과 이집트에 걸쳐 매우 견고한 상업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의 향신료 무역과 대 아시아 무역 자체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포르투갈은 유럽의 끝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상공업이 매우 취약하고 국가 자체의 재정도 크게 부족했다. 그런 뒤쳐진 기반으로 인해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력 등이 떨어졌고 유럽 내 최빈국 중에 하나로 인식되었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당시 엔리크 왕자의 주도로 인해 시작된 아프리카 해안 항로 개척은 포르투갈의 모든 재정과 더불어 국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사업이었으며 아프리카 해안 개척 사업은 유럽 최빈국 중에 하나였던 포르투갈의 미래를 바꾸게 된다. 아프리카 남쪽으로 향하던 항로들이 개발되었고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까지 연결된 항로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포르투갈이 인도 항로를 개척하게 되면서 베네치아는 과거에 부유했던 영광을 잃고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향신료들 중 후추 외에 유럽에서 중요한 향신료는 육두구(Nutmeg)와 정향(Clove)이다. 육두구는 열매 속에 든 흑갈색 씨앗 부분을 갈아서 만든 것으로 정향이나 후추에 비해서 향이 자극적이지 않지만 묘하게 고급스런 향미가 있다. 생강, 후추, 박하가 섞인 듯하면서 달면서 톡 쏘는 듯한 향이 나기 때문에 누린내나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탁월한 향신료다. 육두구는 햄버거나 소세지 같은 다진 고기를 이용한 요리에 사용하면 고기의 누린내를 제거하고 향을 더할 수 있으며 달걀 요리에 조금 넣으면 달걀 비린내가 없어진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육류 요리와 더불어 계피, 생강 등과 같이 제과용 향신료로 쓰이기도 한다. 게다가 기억력을 좋게 하고, 위장을 튼튼하게 하며,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효능이 있어 설사를 멈추게 하고, 소화를 돕는 신비한 향신료로 알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여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아직도 가루로 가공되기 직전인 육두구 열매는 굉장히 비싸다.
한편 정향은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향료 가운데 부패방지와 살균력이 굉장히 좋다. 정향은 고대부터 대표적인 묘약의 하나였다. B.C 3세기 후한(後漢)의 『한관의(漢官儀)』라는 책에 의하면 정향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궁중 관리들이 황제를 알현할 때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이것을 입에 품었으며, 이것을 '계설향'이라고 불렀다. 중세 아라비아에서는 이것을 먹으면 불로장생하고 백발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정향은 우리나라에서도 귀한 약재로써 오래전부터 알약이나 가루약, 달임약 등 다양하게 이용되는데, 『동의보감』에도 그 처방이 나와 있다. 비위가 허하고 배가 차고 아프며 게우거나 설사하고 입맛이 없을 때, 딸꾹질, 소화장애, 무릎과 허리가 시리고 아픈 곳, 특히 회충증 등에 사용된다. 중국 요리 중에는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 부위에 향신료를 넣어 오랫동안 삶은 중국의 고기 요리인 오향장육(五香醬肉)에, 서양에서는 디저트나 음료, 고기 요리나 피클, 소스를 만들 때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정향은 후추보다 더 귀한 향신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