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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투르크 제국 군대의 역사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17 13:46:43
  • 수정 2026-07-17 14:31:03

오스만투르크 제국 군대의 역사는 크게 5부분으로 분류된다. 1300년대 초부터 점차 영토를 확장해나가며 1453년에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것을 1단계로 보여지며, 메흐메트 2세가 본격적으로 통치한 1451년부터 지트바토로크 조약(Frieden von Zsitvatorok)이 체결된 1606년까지가 2단계, 이후 1606년부터 술탄이 직접 지나치게 강력해진 예니체리를 강제로 해체시켜 버린 1826년까지를 3단계, 급격한 군대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던 1826년부터 1858년까지가 4단계, 그리고 마침내 불안정한 정세로 나날이 국력과 군사력이 동시에 쇠퇴해갔던 1861년부터 1919년에 체결되어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를 인정한 무드로스 종전 협약까지를 마지막 5단계로 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6년 1월, 갈리폴리 전역(전투)의 승리 이후 오스만 제국(현 터키)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 촬영된 오스만 제국군 지휘부와 독일 제국 군사고문단의 단체 사진, 출처 : Freie Universität Berlin

오스만의 군대 역사의 1단계인 1200년대에 오스만 제국의 건국 직후의 오스만 군대는 주로 유목민들로 이루어진 기병들이었으며, 군장이나 무기도 통일되지 않았기에 정규병이라기보다는 약탈 집단에 조금 더 가까웠다. 이들을 1200년대 후반에 오스만 1세가 하나의 지휘 계통 하에 통합하고 본격적인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점차 체계를 갖춘 군사들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의 오스만투르크의 군대는 주로 기병 위주의 군대로 활이나 투창 등을 사용하였으며 게릴라 전술 등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정복한 곳의 토지들을 약탈하거나 땅을 분배받는 형식으로 월급을 지급하였다. 


이 약탈이 끝난 것은 오르한 1세가 병사들에게 정식으로 봉급을 주는 것을 시작하고, 대대적으로 서구나 페르시아의 용병들을 고용했을 때부터로 알려져 있다. 일반 보병들은 야야(yaya)라고 불렀으며, 보조병 성격으로 기타 잡일들을 도맡아 하던 경보병들은 뮈셀렘(Müsellem)이라 불렀다. 14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초기 형태의 총을 구비한 총병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피야데 톱추(piyade topçu)라고 부르는 총 보병이 전문화되기 시작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제국들 중 처음으로 총기를 전격적으로 군대에 도입한 국가였다고 한다. 


이들이 워낙 총기를 이른 시기에 도입했기에 당대의 오스만 군대는 같은 시대의 페르시아, 혹은 비잔틴, 서양의 군대를 압도할 수 있었으며, 이에 충격을 받은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나 인도의 무굴 제국 등이 서로 총기를 도입할 정도였다. 이들은 전장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여 바예지드 1세 재위기에 쇠락해가는 비잔틴 제국의 군대를 격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특히 정복자 메흐메트 2세의 시대에는 개종한 무슬림들로 만들어진 예니체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세계의 첫 상비 총 보병이라 불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는 본격적인 군사 개혁을 실시하였고, 이 시기가 오스만 군대의 2단계로 여겨진다. 술탄은 발칸 반도의 기독교도들과 비잔틴 제국의 신민들을 모아 만든 데브시르메 제도를 개정하여 본격적인 상비군을 편성하는 등 군대를 편제를 확립하였으며, 군대를 크게 중앙군과 지방군으로 나누어 중앙군을 카프쿨루(Kafqulu), 지방군을 에얄레트(Eyalet)라고 불렀다. 또한 화기 개발에도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큰 공헌을 한 대포 다르다넬스를 확대 생산하였으며, 이로 인해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800년대까지도 이 대포를 상시 운용하기도 했다. 


1465년에는 본격적인 머스킷 병사들이 등장하였으며, 16세기에는 그 유명한 다마스쿠스 철강을 사용하여 머스킷 총을 생산하기도 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끊임없이 발전된 화기를 군대에 새로이 도입했기 때문에 오스만의 군대는 수백 년 간 서구 군대에 비하여 화력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아나톨리아를 여행한 중국 명나라 여행가 조서전(趙徐堅)이 투르크의 총기가 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기록에 남길 정도였다. 이와 같은 화력의 우위, 그리고 예니체리 부대의 강력한 조직력과 지휘 능력 등이 합쳐지면서 이 시기의 오스만 군대는 유럽의 군대들보다도 훨씬 강력했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군악대 역시 16세기의 예니체리 부대에서 메흐테르(Mehter)라고 이름으로 처음으로 창설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관료들은 원정이 있기 전 군대에게 필요한 식량의 양을 계산해야 했다. 그리고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식량을 전부 현지에서 구매하거나 현지에 세워둔 창고에서 해결하려 들면 해당 지역의 물가가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었기 때문에, 관료들은 이전 원정에서 남은 식량이 얼마나 되는지, 또 새로 구입해야 하거나 보급해야 하는 식량은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서 필요한 식량의 양을 결정해야 했다. 또한 다음 해의 원정을 위해 그 해에 모은 식량을 모두 사용해 버릴 수는 없었으니 그에 대한 잉여분도 충분히 잡아야 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군대에 필요한 식량을 징발한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관료들은 식량 운송비는 물론 식량 구입비까지 계산해야 했다. 


주둔지나 행군경로 인근의 작황이 좋지 않으면 당연히 구입비가 늘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모았다가 남은 식량은 비축되기도 했지만 봄이나 추수기에 구입한 가격으로 다시 해당 지역에 되팔았는데, 대개 원정이 겨울에 끝나다보니 식량 가격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정부가 저가로 식량을 판매하는 것은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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