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추전국시기에 ‘밴최’라는 신의가 있었고 ‘황제내경’ 이라는 책에는 중국역사상 제일 처음으로 마사지가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기재되어 있었다. 진, 한 시기에는 지금 알고 있는 중국 역사상 제일 처음으로 안마학 서적 "황제기백안마십권"이 있었고, 명의 "순우의"가 "한수추" 라는 방법으로 두통. 고열 등 병을 치료했다.
삼국시대와 5호 16국, 남북조, 수, 당 시대에는 안마학에 있어 사실상 전성 시기였다. 3세기 사마씨의 진(晉)나라 때에는 세계에서 제일 처음으로 관절 탈위 회복 방법이 있었다. 수, 당 시기에는 안마기술이 발전하여 독립적인 의료조직이 있었다. 안마박사, 안마사, 안마 공으로 등급을 나누었고 안마 교학을 시작했다.
이 시기 자기 안마법이 유행되었고 고마라 하여 안마하기 전 몸에 발라서 몸이 열이 나게 하는 의약도 당시 큰 발전을 가져왔다. 이 때 당나라의 경제, 문학, 교통이 매우 발달되었기에 안마란 의료법은 당나라에서 조선, 일본, 인도 등의 국가에도 전해졌다. 송, 금, 원나라 때 안마는 관절 탈위 등 여러 가지 상한 뼈들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때의 안마이용의 범위는 날이 갈수록 광범위해졌고 안마의 권법분석을 더욱 중요시했다. 명나라 때는 안마병원이 있었다. 소아 안마의 독특한 조직이 세워졌다. "소아안마경"은 중국에 현재 보관되어있는 역사가 가장 오랜 소아 안마 서적이다. 청나라 때 대의원에는 안마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의종 금감” 이란 책은 골격 안마의 권법을 개괄하여 模(모), 接(접), 端(단), 提(제), 按(안), 摩(마), 推(추), 奈(나) 등 8개 방법으로 결론 지었다.
이것을 안마의 8가지 기본권법이라고 한다. 1956년에 안마는 정식으로 국가교육부에 들어갔고 1958년에는 안마전문병원이 생겼고 안마전문학교도 생겼다. 이때 10여권의 안마서적을 출판했고 270여 건의 논문이 발표 되었다.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 시기 안마 사업은 또다시 제지 당하고 위기에 처했다.
1976년 이후 안마학술활동이 차차 회복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국 일본, 미국, 영국, 캐나다, 한국 등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어 안마를 배우게 했고 중국의 안마의사들도 세계 선진적인 나라에 가서 안마기술을 학습하고 지도해 온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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