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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_칸첸중가_002_락바 라마
  • 김홍성
  • 등록 2026-06-04 11:38:38
  • 수정 2026-06-04 12:07:11

장편소설_칸첸중가_002_락바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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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 유스호스텔의 늙은 종업원 이름은 락바 라마였다. 나이 오십은 넘어 보였는데 실은 사십이 채 안 된 사람이었다. 네팔의 동부 산악 지방 출신, 18세에 인도군에 지원 입대해 7년간 다르질링 인근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트레킹 회사의 포터로 일하다가 독립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다르질링 유스호스텔에 투숙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상대로 트레킹과 관련된 일거리를 찾아서 했다. 때로는 쿡, 때로는 가이드, 때로는 포터, 즉 휘뚜루마뚜루 고객의 필요에 따라서 무슨 일이든지 했다는 얘기다.

락바 라마의 이력을 그만큼이나마 알게 된 것은 투숙한 날 밤부터 사흘 내리 심한 몸살을 앓고 난 후였다. 사흘 동안 락바는 아침저녁으로 벽난로에 장작을 때 주었고, 마늘을 다져 넣은 녹두죽을 끓여 왔다. 격자창의 깨진 유리창 사이에다 유리 대신 누런 종이상자를 잘라 끼워 운무를 차단해 주기도 했다. 좀 심하게 앓았던 둘째 날 밤에는 양털로 짠 두꺼운 담요를 가져다 매트리스 위에 깔아 주기도 했다.

내가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게 되자 락바는 말했다.

-다르질링의 겨울은 아주 나쁘다 (winter, very bad). 짙은 운무 때문에 해가 나지 않고 아주 춥다 (heavy fog, no sun, very cold). 급수에 문제가 많다(water big problem). 관광객이 없고 일도 없다. (no tourist no job).

괄호 안에 넣은 그대로, 단순한 단어를 나열했지만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나는 락바 라마에게 그의 신상에 관해서 물었고, 그는 대답했다. 다음은 그중 한 대화다.

-인도 군대는 좋더냐? (India army time OK?)

-때로는 좋았고, 때로는 나빴다. (sometime OK, sometime no OK)

훗날 조금은 세련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 않지만, 대개는 위와 같았다. 이것으로 족했다. 우리는 정확한 정보 교환보다는 느낌 또는 교감을 필요로 할 때가 더 많았다. 그것은 표정이나 몸짓으로 충분했다.

몸을 추스른 후에도 외출은 삼갔다. 열은 내렸지만, 기침은 여전히 심했다. 락바 라마가 장난감 양철배를 발견하고 관심을 두기에 조금 설명해 줬더니, 그 방의 어느 창턱에서 타다 남은 납작한 양초 토막을 금방 찾아왔다. 양은 대야에 물도 담아 왔다. 앙증맞은 배가 촛불을 싣고 제법 증기 엔진 소리를 내며 대야 가장자리에 머리를 대고 맴도는 것을 보면서 락바 라마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촛불이 꺼지고, 다른 초 토막을 찾아오고 하던 중에 놀이는 결국 시들해졌다. 락바는 대야를 들고 나갔고 나는 양철배의 물기를 닦은 후 다시 창턱의 일기장 위에 놓았다. 유리창 밖은 여전히 운무가 짙었다. 양철배는 선창에서 운무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요트 같았다.

아마 그 뒷날 아침이었을 게다. 잠에서 깨서 기지개를 켜다가 무심코 바라본 격자창이 평소보다 훤했다. 자욱했던 운무가 걷히면서 아침 햇살이 퍼지는 중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아침 햇살이 하늘의 운무를 마구 헤치는 것 같았다. 밀어서 열 수 있는 창 셋 중 하나를 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커다란 산이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새파란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있는 그 산의 봉우리들은 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는 구름 같은 것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좀 더 후련하게 보기 위해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옥상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락바 라마였다. 환한 햇살에 흰 이를 반짝이며 락바 라마가 말했다.

“칸첸중가!”

해발 8천5백9십8미터. 설산 칸첸중가를 처음 본 감격이 충분히 저장되기 전에 시야가 흐려졌다. 강렬한 태양열에 의해 대지의 수분이 다시 증발하면서 대기의 수증기 농도가 점점 짙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골짜기에 낮게 엎드려 있던 구름이 뭉실뭉실 부풀어 오르더니 산등성이를 타고 넘으며 맹렬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7시가 채 못 되어 다르질링은 다시 짙은 운무에 휩싸여 버렸다. 칸첸중가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계속>


장편소설_칸첸중가_002_락바 라마

덧붙이는 글

러시아 화가 니콜라스 로에리치(Nicholas Roerich, 1874~1947)의 칸첸중가를 삽화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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