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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민주화 혁명 이후의 루마니아, 침체된 동구권 사회경제적인 자화상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6-04 13:05:27

1992년 루마니아 선거에서 가장 크게 패배한 당은 루마니아 민주공회를 떠난 민족자유당(The National Liberal Party, NLP)이었다. 공산주의적 정당들은 선거 이후 민주민족구국전선을 중심으로 연립하여 무소속 출신의 기술 관료인 니콜라에 바카로유(Nicolare Vacaroiu)가 수상이 되어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연립 내각은 내부에서 약간의 변동을 거쳐 1996년 가을 선거까지 지속되었다. 인민주의적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제의 구조하에서 바카로유 내각은 여러 사안들의 주요 쟁점에서 의회와 타협하는 입장을 취하고는 하였다. 그러나 이 내각은 정치적 권위의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국립 언론 매체나 국가 안보에 대한 감시, 그리고 국가 통제의 역할을 결코 의회에 내주지 않았다. 1992년 선거 이후 헝가리와 근접해 있는 트란실바니아와 기타 루마니아 지역 사이의 유권자들의 정치적 입장이 점차 양극화되어 가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와 같은 양극화는 전통주의적 민족주의적 정당들과 근대화 및 유럽화를 지향하는 정당들 사이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1990년 3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트르구무레시(Târgu Mureș)에서 발생한 루마니아인과 헝가리인 간의 격렬한 민족 갈등(일명 '흑색 3월', Black March) 당시의 집회 현장, 출처 : Balkan Insight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일리에스쿠 정부는 실질적으로 반(反) 서구적, 반(反) 지성적, 반(反) 자본주의적 성향을 뚜렷하게 나타내면서 차우셰스쿠 때보다는 낫지만 차우셰스쿠 막장 행각 못지 않은 성격을 드러냈다. 이로 인하여 루마니아에서는 자연스럽게 개인 사유화나 시장 경제 체제로 향하는 경제적 변혁의 속도는 매우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소수 민족을 위한 권리와 제도 수립을 위해 그에 대한 변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루마니아의 국내 정치의 불안정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통합하려고 하는 외교적 노력을 낙관적으로 평가하였는데 유럽 공동체는 루마니아에게 부회원 국가의 지위를 부여했다. 1993년 7월 선거에서 일리에스쿠의 정당은 루마니아 사회민주당으로 개칭하여 유럽으로부터 개혁적 좌파 정당으로 인정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청은 유럽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연장으로 인식되어 기각되었다. 대체로 불가리아에 비하여 루마니아의 개혁 내용이나 속도는 크게 뒤지고 있었기에 당시 유럽 공동체는 불가리아와 비교해서 루마니아를 보곤 했다.


이러한 루마니아의 정치 구조는 권력을 평화적으로 야당에 이양시킬 수 있는 정도의 단합성이나 성숙성, 그리고 정치적 협상의 능력은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루마니아 야당들은 정치적 철새의 경향이 여전히 심하며 1995년 초, 하원에 22명의 의원들이 무소속, 상원에 15명의 무소속 의원을 위시하여 15개 정당이 존재하고 있다. 정당들의 분열과 합병은 같은 계보 내에서도 끊임없이 지속되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어 점차적으로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들이 우세해지는 경향으로 귀결되고 있다. 민주적이거나 자유주의적 정당은 매우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합되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화를 추진시키기 위한 시민적 조직이나 운동들이 차츰 증가하고 있지만 지도부들이 아직도 공통의 이해보다는 개인적 경쟁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내분이 심하여 여당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1992년 선거에서 승리한 일리에스쿠 정부는 공산주의 붕괴의 여파로 인하여 권위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체제를 공산주의의 대안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1996년 자유 의회 선거 이후에도 루마니아가 민주주의적 전환에 들어 선 것인지, 아니면 민주주의적 전환의 이전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에 관하여 큰 논란이 일었고 이에 과도기적 성격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1990년대 루마니아의 정치와 체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물론 1996년 11월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변혁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더 유력하지만 과거 차우체스쿠 체제의 낡은 유산과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민주주의 외양을 가졌지만 권위주의와 정치적 통제, 그리고 여론 조작은 공산독재만큼이나 심각했다. 루마니아의 이와 같은 지연된 정치 체제의 발전은 발칸 지역에서도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그 중에서 루마니아가 가장 낙후되었다. 민족구국전선(National Salvation Front)과 일리에스쿠를 중심으로 한 전통정파들은 여전히 과거 공산당 간부들이 운영하던 루마니아식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있으며 서구적 정치 경제 모델을 채택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루마니아 변혁은 여전히 관료적, 중앙 집권적인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한 국가주의적 전통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제도화된 민주 절차를 공공연히 무시하고 사회적 선동, 정치적 카리스마를 이용한 정치적 야합을 행사하여 권력을 독점했다. 국수주의자들은 1989년 혁명 당시 민중들의 민족주의적인 감상과 일리에스쿠 정부와의 야합으로 큰 이득을 보았기 때문에 점점 더 맹렬하게 민족적 공산주의 시각을 선전하였다. 한편,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위기에 지친 루마니아 국민은 약체인 자유 민주주의적 정당보다는 민족적 색채를 띄면서 자신들의 복지와 생활을 보장해 주는 공산주의적 정당들의 연합과 선전에 쉽게 현혹되었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발칸 지역의 국제 정세와 여론에서 고립하여 존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자유 선거, 언론의 자유, 인권, 시장 경제 등의 국제적 기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리적,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 있는게 루마니아의 현실이기도 하다. 국내 정치의 보수화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정부는 계속하여 서유럽 대서양측과의 통합에 참가하여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1996년 11월의 의회와 대통령 선거는 루마니아의 정치에 있어 크게 획기적인 새로운 변화를 가지고 올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야당이 의회와 대통령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권력을 거머쥔 것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크게 두드러진 부정 행위는 보고 되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고 역대 선거 중에서 가장 깨끗한 선거로 알려지고 있다. 루마니아 민주공회는 라두 바실(Radu Vasile)이 지도하는 민족농민당과 1996년 이전에 피터 로만이 창당하여 여당과 끊임없이 대립해온 사회민주연합(Social Democratic Union)의 지원을 받아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루마니아 민주공회는 30.2%의 득표율과 의회의 122석을 확보하였다. 이것은 루마니아 민주 정치에서 야당의 첫 승리였다. 1996년 루마니아의 사민련은 트란실바니아 출신의 소수 민족 정당인 헝가리 민주연합당(Democratic Alliance of Hungarians in Romania, RMDSZ)이 본격으로 의회에 참여함으로서 빅토르 쵸르베아(Victor Ciorbea)를 수상으로 하여 새로운 연립 내각을 형성할 수 있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공회에서 후보자로 선출된 에밀 콘스탄티네스쿠(Emil Constantinescu)가 1차 투표에서는 28.2%의 득표율로 32.2%를 획득한 이온 일리에스쿠에 이어 2위를 하였으나 2차 투표에서는 야당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54.4%를 획득하여 일리에스쿠를 누르고 승리하였다. 이와 같은 선거의 결과는 루마니아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건이 되었다. 1997년 2월 빅토르 쵸르베아는 루마니아 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영과 개인 사유화를 위해 여러 충격 요법을 위한 긴축 정책을 선언하였다. 같은 해 8월에 쵸르베아는 다시 적자를 양산하는 대규모 국유 산업체에 대해 폐쇄 조치를 하고 국제 정치면에서도 새로운 개방을 위한 정책을 시도하였다. 수상은 3월 헝가리를 방문하여 5개 협정안에 서명하여 외교에 있어서도 본격적으로 개방할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양국 사이의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루마니아 국내에서는 루마니아의 헝가리 민주연합이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루마니아는 또한 우크라이나와 호혜 상호 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사이에 오랫동안 역사적 쟁점으로 남겨져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게 된다.


1997년의 루마니아 선거는 루마니아 국내 민주화와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 주었다. 루마니아는 시장 경제 도입이나 개인 사유화 정책, 그리고 경제적 경쟁력 회복의 속도가 매우 지연되어 왔으나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우선적인 조건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적 절차 및 제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 후반기에 들어 발족된 루마니아의 정치적 지도부가 위기 관리 면에서 능력을 발휘해 민주화의 길에 성공을 거둘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다시 민중이 오랫동안 누적된 불만으로 인하여 권위적 인민주의 체제로 돌아 설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함께 재기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발칸 지역의 새로운 정책적 모델로서 모든 유럽인들의 공통된 관심사 및 현대사적 토론 과제로 남게 될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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