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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_칸첸중가_020_홀리 축제/일기장
  • 김홍성
  • 등록 2026-09-28 10:42:14


장편소설_칸첸중가_020_홀리 축제/일기장

 홀리축제

이튿날도 하늘이 맑았다.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광장에서 티베트 빵과 차로 아침을 때웠고,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찾았으며, 내의를 비롯한 의복을 모두 세탁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더러워진 옷들은 다시 세탁소로 가져가 맡기면서 침낭을 찾을 때 같이 찾겠다고 했다. 침낭은 다음 날, 늦어도 그다음 날 오전에는 도착할 거라고 했다. 만약 오전에 침낭을 찾는다면 오후에 바로 갱톡으로 떠나고 싶었다.

깨끗한 옷으로 산뜻하게 차려입고 나온 자는 볼 일 다 봤다고 금방 방구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광장을 거닐다가, 벤치에서 햇볕도 쬐다가, 서점에도 들어갔다. 다르질링에서 지낸 몇 달 동안 서점 출입은 지도를 사기 위해 들렀을 때 말고는 처음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책은 수공예로 묶은 그림책들이었다. 그중 한 종류는 시킴의 랄리구라스를 생태나 서식지에 따라 분류하면서 채색 삽화와 판화 수십 장을 묶은 책이었다. 인쇄된 것이 아니라 한 장 한 장 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며, 사람 손으로 한 권 한 권 바느질로 제본한, 크고 무거운 책이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서 소포 우편 발송용 박스에 들어 있었던 그 그림책은 탐나는 책이기는 했지만, 내가 살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나는 그 책을 받고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책이 로에리치의 그림책, 즉 일본 청년 요시부미가 산닥푸 능선에서 보여주었던 책이었다. 카운터에 가서 러시아 화가 로에리치에 관한 책이 있는지를 물었다. 서점 주인은 ‘지금 여기엔 없지만 꼭 살 거라면 알아봐 줄 수는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인도식 영어를 곱씹어 본 후에야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그의 말은 친절한 듯하지만, 형식적인 말이었고, 나 같은 처지의 여행자에게는 ‘없다’라는 말이 더 쉬운 말이었다. 
 
페마네 뚱바집으로 향했다. 출출하여 ‘달 밧 떨커리’가 먹고 싶었다. 취생몽사 커플은 페마네 ‘달 밧 떨커리’가 최고라고 했다. 가격이 싸고 소화가 잘 되며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주인 페마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반겼다.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페마. 많은 식객을 앉혀 놓고도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뚱뚱한 몸을 침착하게 움직여 정성스럽게 시중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식을 나르던 총각 종업원이 탁자 모서리를 건드려서 마호가니 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졌는데 페마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태도가 좋았다. 만일 아까운 내색을 하면서 ‘에이, 조심하지 그랬어.’라는 등의 원망하는 말을 뱉었더라면 종업원은 물론 손님들 마음도 편치 않았을 것이었다. 
 

드르륵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취생몽사 커플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그들은 미륵불 사진을 찍으러 굼 쪽의 오래된 곰파에 다녀오던 중에 길에서 두 해 전 시킴 트레킹 때 안내인을 만났다고 했다. 안내인은 점심을 같이 먹을 시간 밖에는 없다고 하여 같이 페마네로 왔다고 했다.

소변 한 번 보고 올 시간이 지나자, 또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아는 얼굴이었다. 시킴으로 트레킹 일을 하러 떠났던, 내가 병들었을 때 벽난로에 장작불을 지펴 주었던 락바 라마였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었지만, 작별할 때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그가 바로 취생몽사 커플의 2년 전 트레킹 가이드였다니! 너무나 반가웠던 나머지 우리는 두 손으로 마주 잡은 서로의 손을 오래 흔들었다. 

우리 넷 모두 달밧떨커리를 먹었다. 큰 쟁반에 수북이 담아 준 흰밥은 누구 말마따나 밥 뒤에 숨어도 될 만큼 높아서 하얀 설산을 연상케 했다. 페마는 밥이 어느 정도 줄면 어느새 밥통을 안고 나와 또 퍼주었다. 결국 두 손으로 밥 쟁반을 가려야만 했다.

달(녹두죽)도 여러 번 퍼주었다. 몽사는 달이 소화를 돕고 몸의 열을 식혀 준다고 했다. 잘게 토막 쳐서 걸쭉하게 요리한 닭고기도 서너 점 먹었고, 양배추 ‘아차르’도 맛 봤다. 아차르란 유채 기름과 함께 자그마한 유리병 속에서 발효시킨 일종의 장아찌였다.

락바 라마는 다음 날 갱톡에서 칸첸중가 트레킹을 떠난다고 했다. 나도 조만간 트레킹을 위해 시킴에 간다고 했더니 무척 아쉬워하면서 자기가 소속된 갱톡의 여행사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락바 라마를 찾으면 자기가 어디에 있으며 언제 오는지 알려 줄 거라고 했다.

락바 라마는 우리가 밥을 다 먹자마자 일어섰다. 홀리 축제로 인해서 조금만 지체하면 갱톡에 못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터미널 주변과 협궤 열차 역전 주변에서는 벌써 물감 가루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광란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했다.

몽사는 그들 대부분이 대마초가 원료인 방라시를 마신다고 했다. 눈빛이 달라진 자들의 소동은 이제 곧 다르질링 시가지 전역으로 퍼질 것이라고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 락바 라마가 우리와 작별하고 빠져나간 식당 앞 골목에도 가방을 멘 남녀 학생들이 붉고 푸른 물감으로 얼굴과 옷에 칠갑하고 돌아다녔다.
 

그들은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면서 깔깔대고 있었다. 쫓기다가 포기하고 쪼그리고 앉은 여학생의 머리와 목에 붉은 물감 가루를 봉지째 털어 넣는 남학생도 있었다. 몽사는 그 장면을 여러 컷 집요하게 촬영하면서 락바 라마가 간 방향으로 이동했고, 취생은 그 뒤를 조심조심 따라갔다. 


일기장

홀리 축제의 소동을 피해 숙소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일기장에 시선이 꽂혔다. 트레킹에서 돌아와 알리멘트에 맡겼다가 찾아온 짐 속에서 나온 뒤로는 며칠 동안 줄곧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일기장이지만 겉표지에 인쇄된 그림이 문득 경이롭게 보였다.
 

해무가 자욱한 바다 그림. 멀리 큰 산이 있고(섬일지도 모름) 가까이엔 암초들이 있고 파도가 암초들을 향해 몰려오는 풍경화. 거기 검은 정장 차림의 노랑 곱슬머리 사내가 긴 지팡이를 짚고 삐딱하지만, 견고하게 서서 그 풍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림이었다. 

콜카타 박물관 뒷골목 서점에서 A4 크기에 2백 페이지 분량의 고급 양장본_洋裝 本 노트를 발견했을 때는 일기를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그림이 좋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로컬 위스키 세 병값을 주고 샀지만, 쓸 말이 없었다. 그 좋은 공책에 날마다 똑같이 ‘마시고 자고 마시고 잤다’라고 쓸 수 없었다.
 

내게는 일기장을 장만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라는 인간이 영 몹쓸 인간이 되지 않은 이유는 늘 일기장을 꿍쳐두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도 때도 없이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불안과 회한, 아무리 마셔도 목이 타는 술로 나날이 망가지면서도 일기장을 장만했다는 것은 하루하루의 삶을 아끼고 자중자애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콜카타에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지만, 다르질링에 도착하여 어느 날 불현듯 쓰기 시작했던 일기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불과 보름쯤 이전의 기록인데도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다르질링의 운무 속에서 전생처럼 떠오른 기억의 일면들은 그렇다 치고, 끝을 맺지 못한 유서 같은 편지는 여러 번 찬찬히 읽었다.

병이 들어 앓고 있었고, 외로웠고 고통스러웠으므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정말 그렇게 절박했을까 싶었다. 게다가 중언부언 변명만 길게 나열한 게 스스로 가증스러웠다. 나는 기어코 그 페이지를 뜯어냈다. 그 페이지를 자꾸 찢었다. 손톱만 해 질 때까지 가로로 찢고 세로로 또 찢었더니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서 작은 봉분을 이루었다.

그래도 성에 찾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에 남은 엄살과 변명을 영구히 추방하고 싶어서 봉분을 두 손으로 뭉쳐서 양철배 속에다 실었다. 실었다고 하기보다는 쟁여 넣었다고 해야 옳다. 선적 작업이 완벽하게 끝났을 때야 내 뱃속 깊은 곳에서 일종의 희열이 배시시 올라왔다. 

과거에도 한동안 일기를 쓰곤 했다. 물론 찢기도 하고, 태우기도 하고, 분실하기도 했다. 그래도 끝내 붙들고 있었던 일기장들은 출국 전에 모조리 태웠다. 가져올 수도 없고 남겨 둘 수도 없었다. 묵은 일기장들을 태우던 내 뒷모습이 그림의 저 노랑 곱슬머리 사내 같았을까? 아닐 것이다. 차라리 조금 전, 유서 같은 페이지를 뜯어내 잘게 찢던 때의 내 모습이 그림의 사내와 더 가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을 열고 새 페이지에 지나온 트레킹 일정을 날짜별로 간략히 메모했다. 트레킹 이후 취생몽사 커플과의 만남, 실리콜라의 펨 도마에게 한 거짓말도 적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떠올랐지만, 변명 같아서 쓰지 않았다. 대신 ‘일마(이놈), 절마(저놈), 글마(그놈)’등의 거짓말하는 분신을 용납하지 말자는 다짐을 꾹꾹 새겨 넣었다. ‘술도 끊겠다’라고 썼다가 ‘조금은 허용한다’로 고쳤다. 
 

일기장을 덮고 일기장 표지 위에 양철배를 올려놓았다. “시킴에 갈 때는 너희 둘 다 반드시 데려가 주마 …….” 라고 일기장과 양철배에게 말했다. 일기장은 양철배의 닻이고 선착장이었다. 또한 양철배가 허공으로 실어 나를 공허한 화물이 쌓이는 창고이기도 했다. 창밖에 또 운무가 몰려와 있었던 이날, 취생몽사 커플은 밤늦게 돌아왔다. 일부러 나가 보지 않았다. < </span>계속 > 

* 삽화: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1818년).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그림.

#장편소설_칸첸중가_020_홀리축제/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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