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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든 포지션 설정이 중요하다. 여기서 포지션이란 단순히 상대보다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 아니다. 무엇을 문제로 보고, 누구의 책임을 묻고, 어떤 해법을 찾을 것인가를 정하는 출발점이다. 글쓰기도 그렇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개인의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 보이고, 사건이 벌어진 조건에서 출발하면 그 조건을 바꾸는 방법이 보인다. 한때 이름난 싸움꾼 시라소니가 이정재 계열의 조직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이야기는 이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전해지는 일화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지만, 세부를 모두 사실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혼자 싸우는 사람의 기량과 여러 사람이 동원한 조직적 폭력이 대등한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단지 시라소니가 방심하거나 오만했기 때문에 벌어진 패배로 설명한다면, 폭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쪽의 책임이 흐려진다. 글을 쓸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처음부터 문제를 ‘개인이 얼마나 강한가’로 설정하면 그가 처한 조건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반대로 조건만 이야기하며 개인의 선택을 완전히 지워 버려도 설명은 빈약해진다. 좋은 포지션 설정은 어느 한쪽을 미리 정답으로 삼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과 그 선택을 제약하는 조건을 함께 살피되, 사안에 따라 무엇이 핵심인지 가려내는 일이다. 이 점에서 안광복 선생의 「인생 최대의 적, 자아에 휘둘리지 말라」(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6/03/07/UCT7L6NUFVAO7K22MSKVVEEZ5U/)는 흥미로운 논쟁 상대다. 그는 타인의 험담이나 사소한 도발에 일일이 맞서다 보면 오히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잃는다고 말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불필요한 싸움을 키우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는 권고다. 일상에서 겪는 모욕이나 말다툼을 생각하면 충분히 귀담아들을 만하다. 모든 비난에 대응할 의무는 없으며, 때로는 물러나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 하나가 생긴다. 우리가 마주한 일이 단순한 험담인지, 시정해야 할 부당함인지는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근거 없는 비난과 제도적 차별은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없다. 누군가의 무례한 말 한마디에는 응하지 않아도 되지만, 반복되는 괴롭힘이나 부당한 처우까지 ‘자아가 상처받은 문제’로만 받아들이라고 권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 침묵은 마음을 지키는 선택일 수도 있고, 문제를 지속시키는 조건이 될 수도 있다. 안 선생의 글에서 더 따져볼 대목은 타인의 비난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내가 뛰어나기 때문에 남들이 시기하고, 세상이 약자의 편을 들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겪는다는 설명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비판을 질투의 산물로 읽게 만들 위험도 있다. 어떤 비판은 무시해야 할 험담이고, 어떤 비판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라는 정당한 요구다. 자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은 비판을 견디는 태도뿐 아니라, 그 비판이 옳을 가능성까지 검토하는 태도를 포함해야 한다. 이 문제를 스토아철학 전체의 한계로 돌릴 수는 없다. 자신의 판단과 반응을 성찰하는 일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나 사회적 실천과 반드시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노에 압도되지 않아야 오래 행동할 수 있는 때도 있다. 비판해야 할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철학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모든 문제의 해법으로 확대하는 습관이다.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함께 힘을 모아 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는 구별되어야 한다. 불교의 ‘일체유심조’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작용을 돌아보라는 가르침을 현실의 고통이 전부 개인의 생각 탓이라는 말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유마경』의 유마힐을 떠올리면, 수행은 세상과 관계를 끊는 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살피면서 타인의 고통에도 응답하는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를 일종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글의 승패는 상대를 몰아붙이는 표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상대가 실제로 한 말을 정확히 읽고, 그 말이 유효한 범위와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안광복 선생의 조언은 사소한 도발 앞에서 유효하다. 그 조언이 부당한 현실 앞에서도 충분한가를 묻는 순간, 새로운 논의가 시작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번 정한 포지션을 끝까지 고집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처음에 어디에 섰는지 자각하고, 새로운 사실이나 반론을 만나면 자리를 옮길 줄 아는 일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할 때가 있다. 목소리를 내야 할 때도 있다. 좋은 판단과 좋은 글은 그 둘을 구별하는 데서 출발한다.( 2026.3.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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