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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대청호반, 수생식물학습원(천상의 정원)을 거닐며
  • 공형일
  • 등록 2026-09-28 22:05:23
  • 물과 바람이 머무는 하늘 아래 뜨락

물과 바람이 머무는 하늘 아래 뜨락

- 옥천 대청호반, 수생식물학습원(천상의 정원)을 거닐며 

1. 대지의 뼈대와 굽이치는 물길

충청의 땅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산과 물이 빚어내는 거대한 운명의 지도가 펼쳐진다. 강원도 오대산과 태백산을 거쳐 소백산, 속리산, 민주지산으로 쉼 없이 굽이치는 백두대간의 거대한 등뼈는 영남과 호서의 경계를 가르고, 그 동편의 빗물은 낙동강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속리산에서 길을 꺾어 안성 칠장산으로 내달리는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은 충청북도의 허리를 동서남북으로 가르며 물길의 운명을 또 한 번 갈라놓는다. 정맥의 북쪽 사면을 타고 흐르는 물은 남한강에 안겨 서해로 나아가고, 남서쪽 비탈을 적신 물은 대청호로 모여 금강 천릿길을 적신다.

 블로그 산행일지 제공

사람들은 대청댐이나 충주댐이 모두 충청북도의 품에 안겨 있으니 한 물길줄기로 쉬이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백두대간 북사면(소백·월악)의 눈물이 충주댐을 채워 한강으로 흐르고, 대간의 서남사면(영취·덕유·추풍)에서 발원한 서화천과 지맥의 실개천들이 대청댐을 채워 금강으로 향하니, 산이 스스로 분수령이 되어 물길을 갈라놓은 자연의 엄정한 질서 앞에 절로 숙연해진다.

 산이 앞을 막고 물길이 길을 끊는 땅. 깊고 험준한 암반 계곡은 예부터 시인묵객들에게는 더없는 풍류처요 수도처였으나, 현대의 문명과 산업에는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는 척박한 터전이었다. 오랜 세월 농촌기본소득의 온기가 절실했던 옥천과 보은의 처연한 침묵 뒤에는 바로 이 장엄하고도 거친 지형의 내력이 서려 있다.

 지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반도는 세 덩어리의 아주 오래되고 단단한 바위 덩어리, 곧 낭림육괴와 경기육괴, 영남육괴가 받치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오랜 세월 밀리고 접히며 솟아오른 거대한 습곡대가 바로 옥천대(沃川帶)다. 낭림육괘와 경기육괘 사이는 임진강대가 가르고, 경기와 영남 육괴는 옥천대가 가른다. 충북 옥천군은 옥천대 남서(변성퇴적암)에 있고, 제천은 옥천대 북동(태백산 석회암)과 육괴·화강암이 맞닿는 자리이다. 그래서 옥천대는 고생대와 중생대의 바다와 호수 바닥에 유기물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흑색셰일과 탄질점판암은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으나, 동시에 비소(As)와 우라늄(U), 몰리브덴 같은 희귀 광물들을 숙명처럼 함께 품었다. 

굽이치는 호반 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서화천변을 따라 다정하게 조성된 인공습지와 수면 위에 떠 있는 수중폭기기, 조류차단막들이 스쳐 지나간다. 맑은 물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정성이 엿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시리다. 뜨거운 여름날 호수 바닥의 산소가 잦아들 때, 침전된 광물들이 물속으로 녹아들고 또다시 산소와 햇살을 만나 살아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자연이 인간에게 건네는 무언의 경고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대청호의 짙푸른 녹조를 치유하는 일은, 단순히 눈앞의 물을 가두는 기술을 넘어 이 땅의 깊은 뼈대와 지질학적 숨결까지 보듬어야 하는 오랜 인내의 여정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2. 하늘과 물이 만나는 고요의 자리, 천상의 정원

무거운 생각의 굽이를 돌아 군북면 대정리, 구불구불한 호반 산길을 따라 닿은 곳에는 ‘수생식물학습원’이라는 단정한 현판과 함께 ‘천상의 정원’이라는 아련한 별칭을 품은 뜨락이 호수를 굽어보고 있다. 

이곳의 이름 ‘천상(天上)’은 저 높은 하늘의 피안(彼岸)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청호 푸른 물결 위, 산허리 중턱에 안온하게 얹혀 세상의 번잡함을 한 발 벗어난 자리. 물 위(川上)를 걷듯 평온하고 고요한 그곳은 지친 영혼이 잠시 날개를 접는 사색과 치유의 언덕이다.

이 정원의 첫 숨결은 대청호 식수원을 맑게 지키고자 연과 수련, 부레옥잠을 정성껏 심어가던 소박한 기원에서 싹텄다. 물속의 탁한 찌꺼기와 부영양화된 염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대신 맑고 싱그러운 산소를 뿜어내는 수생식물들. ‘꽃이 화려한 유원지’가 아니라 ‘물이 식물을 품어 기르고, 식물이 정화된 생명수로 물의 은혜를 갚는’ 공존의 섭리가 이 작은 못마다 잔잔한 파문으로 번져나간다.

 

정원으로 들어서는 첫걸음은 ‘좁은 문’에서 시작된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설 수 없는 문턱. 그것은 성서 속 좁은 문의 비유이면서, 동시에 광활하고 거룩한 대자연의 질서 앞에 인간의 오만을 내려놓으라는 겸허한 초대다. 성벽처럼 단정하게 쌓아 올린 유럽 수도원풍의 건물들 사이, 호수 벼랑 끝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교회당’은 특정한 교리를 외치는 예배당이 아니라, 오직 자신만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멈추어 서는 침묵의 방이다. 

길가에 소박하게 세워진 나무 팻말들은 쉼 없이 달음박질치던 도시의 발걸음을 가만히 붙잡는다. 

“바람보다 앞서가지 마세요.” 

호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결보다, 계절이 흘러가는 순리보다 먼저 서둘러 걷지 말라는 다정한 당부다. 

“거북이처럼 걸으세요.” 

속도를 뽐내던 문명의 조급증을 내려놓고, 발밑의 작은 들풀과 눈을 맞추며 마음속 깊은 곳의 나와 마주하라는 속삭임이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곳.” 

많은 인파를 모아 채우기보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예약제,인원제한) 찾는 이들의 내면을 천천히 비워내게 하려는 정원의 정갈한 철학이 묻어난다. 

호수를 향해 기암괴석처럼 툭 튀어나온 능선길, ‘천상의 바람길’을 걷는다. 호수의 깊은 물살을 어루만지고 올라온 푸른 바람이 먼저 앞서 지나가면, 사람의 발길은 그저 그 바람의 뒤란을 조용히 따를 뿐이다. 

3. 차경(借景)의 미학과 자연의 품격

호숫가 벼랑 끝에 서서 건너편 산세를 마주한다. 탁 트인 호수면 위로 칼로 베어낸 듯 수직으로 솟구친 흑색 암벽과 그 바위틈에 억척스레 뿌리를 내린 낙락장송들이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빚어낸다.

 

자연의 거대한 숨결을 거스르지 않고, 먼 산과 깊은 물을 정원의 울타리 안으로 다정하게 끌어들인 지혜, 곧 우리 옛 선조들이 사랑했던 ‘차경(借景)’의 미학이 이곳 서양풍 건물과 뜨락 곳곳에 온전히 배어 있다.

암반층이 드러난 메마르고 높은 벼랑에는 생명력이 강한 다육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퇴적층 사질토에는 소박한 우리 야생화들이 피어났으며, 물이 고이는 골짜기 습지에는 수생식물들이 저마다의 터전을 가꾸었다. 나무꽃과 풀꽃이 어우러져 화려한 인공의 치장을 뽐내지 않고, 대지가 내어준 지세와 토양에 기대어 최소한의 정성만을 보탠 배려. 그 절제된 균형미가 바라보는 이의 가슴을 한없이 시원하고 편안하게 씻어준다.

달을 바라본다는 망월대(望月臺) 솔바람 아래 앉아 고요히 눈을 감는다. 자연을 살려 사람을 살리고, 물을 정화하여 마침내 인간의 얼룩진 영혼까지 맑게 헹구어내려는 그 고요한 뜻. 

바람을 앞지르지 않고,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발길을 옮길 때 비로소 들려오는 들꽃의 목소리. 천상의 정원은 단순히 눈으로 풍경을 소비하고 돌아가는 유람지가 아니라, 대지의 오랜 상처를 품어 안고 내면의 평화를 길어 올리게 하는 은혜로운 사색의 쉼터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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