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교보문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남편이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침대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 놀란 아내가 외친다. “왜 일찍 돌아왔어요?” 남편이 분노하며 쏘아붙인다. “당신은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뭘 하는 거야?” 아내가 차분하게 대답한다.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화제를 바꿔서 빠져나가려고 하지 말아요!”
‘포퓰리즘’은 정의상 부정적인 현상이다. 거부에 근거한 현상이며, 심지어 무능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가로등 아래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남자에 관한 오래된 농담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디서 잃어버렸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두운 구석에서 잃어버렸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왜 여기 밝은 곳에서 찾고 있는가? 여기가 훨씬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에는 언제나 이런 술책이 어느 정도 들어 있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을 유대인들에게서 찾는다. 복잡한 사회적 과정보다 유대인들이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지젝은 두 가지 풍자적인 농담을 통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 본질적으로 현실의 진짜 문제를 회피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무능한 정치 행태라는 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그는 포퓰리즘의 기만적인 속성을 다음 두 가지 비유로 설명한다.
1. 바람피운 아내의 농담 (본질 흐리기와 적반하장): 자신의 치명적인 잘못(외도)을 들키자 오히려 남편이 일찍 귀가한 것을 문제 삼으며 화제를 돌리는 아내의 모습이다. 이는 포퓰리즘 세력이 사회의 핵심적인 위기나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논점을 흐리고 전혀 엉뚱한 적을 만들어내 대중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수법을 의미한다. 논점 흐리기, 물타기, 허수아비 논증 등은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2. 가로등 밑에서 열쇠 찾는 남자 (문제의 단순화와 희생양 찾기): 어두운 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도 단지 '잘 보인다'는 이유로 밝은 가로등 밑을 뒤지는 남자의 모습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사회 문제(어두운 곳)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가장 눈에 띄고 공격하기 쉬운 대상(밝은 곳, 예컨대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나찌의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결국 포퓰리즘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거부'와 '무능력'에 기반한 속임수이다. 복잡한 현실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대신, 눈에 띄는 가짜 원인(희생양)을 지목해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가장 쉽고 게으른 길을 택하기 때문이다. 논리적 비약과 시선 돌리기, 물타기는 슬라보예 지젝 같은 현대 철학자들이 대중 선동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때 자주 사용하는 흥미로운 통찰이다. 한국의 정치 세력들 중에도 이런 논법을 능숙하게 써먹는 세력들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