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음식시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p> 雪夜閣中賜饌 恭述恩例(설야각중사찬 공술은례)를 중심으로
1. 들어가기
통상의 마르셜 모스의 증여론 연구는 증여론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텍스트의 정합성을 고찰하거나 프랑스 아날학파와 브르디외나 데리다등의 증여개념과 마르셜 모스의 증여개념을 비교 분석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근래의 증여에 관한 연구는 고들리에 의 작업이 존재 한다.
인류학의 장을 연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현장조사를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의 80쪽 분량을 원시사회에서 증여의 형태를 분석하는데 할애하고 고대 로마나 게르만 사회의 증여의 형태를 분석하는데 30쪽 가량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중국에서 증여와 계약에 관한 분석은 체 한쪽 분량도 할애하고 있지 않다. 중국의 신화와 장례 풍습에 관한 마르셀 모스의 단편적인 저작 속에서 그의 중국 문화와 풍습에 대한 단편적 서술만을 확인 할 수 있을 뿐이다.
마르셀 모스는 증여를 총체적 사회적 현상 또는 총체적 사회적 사실로 규정 한다. 총체적 사회적 현상인 증여는 사적이며 공적인 영역모두에서 일어 난다. 인간적 삶의 총체성 다시말해 결혼,장레식, 축제, 의식, 춤, 음악, 시장에서 증여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며 증여는 삶의 순환을 담당하는 메카니즘 그 자체이다. 총체적 현상인 증여에는 역사, 종교, 정치 , 법률, 경제, 도덕 ,심리 ,관습등의 구조들이 씨줄과 날줄로 중첩되어 있다. 본 논문은 세부적인증여론의 텍스트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조선 사회의 증여의 한 사례를 고찰함으로써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언급한 총체적 사회적 사실들이 적용 가능한 사회적 현상을 고찰하는 준거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한 시론을 시도하려 한다.
2. 본 문
1765년 4세에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 다산은 1768년 7세의 나이에 산山을 주제로 오언시를 짓는다. 두보의 시를 차용해서 시를 지은 것은 1774년 13세때의 일이다. 이기환과 자형 이승훈을 추종하여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유고인 논어질서(論語疾書)를 사숙 할 때도 다산은 시를 남기고 있다. 논어고금주나 대학공의와같이 경학을 다루는 다산의 고유한 철학적 작업은 존재하지만 시경에 관한 단일한 저작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속에서 시경강의는 정조와의 문답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의 시에 관한 관심은 다산의 둘째 정학유에게 이어져, 물명의 분류체계에 따라서 시명다식(詩名多識)의 작업으로 이어졌다. 시명다식(詩名多識)의 서문을 다산이 작성했다는 이유에서 일제 강점기때에는 시명다식의 저자가 다산으로 주장되는 일도 있었다.
다산의 시에대한 고찰은 집중본(集中本), 광중본(壙中本)과 같은 자찬묘지명에서 확인 되지 않는 다산생애에 관한 미시사적 접근을 가능하게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현재 확인되는 다산이 남긴 시는 2000여 종류가 확인 된다. 1768년 7세에 지은 오언시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으니, 멀고 가까움이 다르기 때문(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를 짓기 시작해서 두보의시를 모방하여 시를 짓던 13세의 1774년까지를 제 1기로 구분하고, 1776년 ,상경하여 15세에 혼례를 올리고 서울 남촌(지금의 남대문 시장)에서 학업에 매진하던 시기부터 1800년 39세에 정조의 졸곡을 지내고 다산의 고향에 머물던 시기를 제 2기로, 1801년 장기로 유배되고 같은해 강진으로 11월에 유배되었던 1817년까지를 제 3기로, 그리고 해배되던 1818년 57세에서 75세인 1836년까지를 4기의 구분으로 다산의 시들을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p>
2.1 <다산의 생애지도>
본 논문은 다산의 음식시 가운데 증여 그 가운데에서도 음식을 증여하는 사람(증여자)과 음식을 내려 받는 사람(수증자)관계에서 의무관계가 은폐되어 있는 시를 고찰하려 한다. 현대사회에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의 이행이 등가의 가치를 제공한 후에 이루어지게 되면 우리는 이러한 물건을 상품이라고 지칭하게 된다. 등가의 가치 교환이 상품 속에서 익명의 타자와 타자를 매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상품경제의 체계가 아닌 선물경제체계 내에서 행하여지는 교환은 호혜성을 포함하기 때문에 반드시 등가적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증여자와 수증자사이의 관계가 위계적 질서 속에 놓여져 있을 경우 이러한 교환은 비 대칭적 위계적 교환이 된다.
비 대칭적 위계적 교환은 증여자가 자신소유의 물건을 자발적으로 어떤 보상을 가정하거나 전제도 하지 않고 수증자에게 증여 하였을 때 그 비대칭성이 극대화 된다. 외형상 자발적으로 증여자로부터 수증자에게 주어지는 증여행위와 증여되는 물건(선물)은 증여자와 수증자 그리고 받은 선물에 대한 수증자의 답례라는 세가지 계기들속의 의무들obligations을 은페하고 있다. 선물경제체계속에 외형상 은페되어 있는 세가지 의무들은obligations 계약법상의 의무관계는 아니다.
계약법상의 의무들이 아니면서도 고대 사회(로마나 남태평양의 부족의 구성원)는 법적 구속성보다 더 강렬한 의무감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증여하려하고 선물을 받은 수증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 이상으로 증여자에게 시간의 지연 없이 답례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 이였을까 ?
선물경제체계에서 교환은 교환 되는 단순한 물건이나 대상물 뿐만 아니라, 증여자와 수증자의 인격과 정치적 관계가 함께 표상되기 때문이고, 교환 되는 물건은 그것을 교환하는 사람과 절대적으로 분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증여와 증여되는 물건(선물)은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사회의 구성원들이나 개인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주고 받으며 되돌려주는 구조가 형성될 때 그 사회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공속감과 결속력이 강화 될 수 있다.
2.2 다산의 음식시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 雪夜閣中賜饌 恭述恩例<설야각중사찬 공술은례>
'구중 궁문 잠긴 뒤에 앉아서 읊조릴 제, 밤은 깊어 누각 소리 들려오지 않는데 九門下鑰坐咿嚶<구문하약좌이앵> 夜久不聞壺漏聲<야구불문호루성>
바람이 잔 창 밖에 눈송이 펄펄 날리어, 달빛 숨은 대궐 숲 하얀 옥이 깔리니 雕窓風靜雪簁簁<조창풍정설사사> 禁樹月隱堆瑤瓊<금수월은퇴요경> 이 몸이 깊은 산속 들어왔나 착각하며, 숲 속의 싸늘한 방 등잔불만 의지했네 忽疑身入亂山裏<홀의신입란산리> 穹林冷屋依燈檠<궁림냉옥의등경>
내각의 아전이 와서 기쁜 소식 전하는데, 임금 하사 진수성찬 열 사람이 떠멨다나 閣中小吏來報喜<각중소리내보희> 珍羞天降十人擎<진수천강십인경>
행여나 늦을세라 바쁘게 뛰어가니, 날 기다리던 제공들 그제서야 잔 돌리네 蹌踉赴筵不敢後<창량부연불감후> 群公待我纔傳觥<군공대아재전굉>
빨간 대추 송편은 꿀로 떡소 넣었다면, 푸른 우엉 잘게 썰어 감자와 함께 삶았네 紅棗糕團蜜作餡<홍조고단밀작함> 綠藕切細蔗俱烹<녹우절세자구팽> 盞篙
은풍에서 올린 준시 뽀얗게 서리 앉았고, 울산에서 나온 감복 환하게 글자 비추네 殷豊蹲柹潑霜厚<은풍준시발상후> 蔚山甘鰒照字明<울산감복조자명>
멧돼지 배를 가르고 곰고기를 구웠다면, 넙치 말린 포에다가 고등어도 겸하였는데 山猪割肪熊爇爒<산저할방웅설요> 比目之腊重脣鯖<비목지석중순청>
여러 가지 선미를 다 말하기 어렵구나 청빈한 선비 입이 황홀하여 놀랄 따름 <種種仙妙難具述종종선묘난구술 頓令措大口吻驚돈영조대구문경>
궁중에서 음식 하사 그 유례가 극히 적어 척리 훈가 그들만이 영광 받아 뽐냈는데 <內家宣饌例絶少내가선찬례절소 戚里勳家誇獨榮척리훈가과독영>
성주 현인 가까이해 심복을 붙이시고 평범한 공경보다 학사 더욱 총애했네 聖主親賢寄心腹성주친현기심복 學士寵昵踰孤卿학사총일유고경
태창의 녹미 먹어 은덕 늘상 느끼는데오늘의 이 술상은 무슨 말로 형용하리 <太倉祿米常感德태창녹미상감덕 此日此酒寧有名차일차주영유명>
맹상군이 먹여 살린 삼천 명의 식객들은 개 도둑에 닭울음 한두 사람 그뿐이라 <薜門仰食三千客벽문앙식삼천객 只一狗盜一鷄鳴지일구도일학명>
제공이여 이를 생각 단단히 경계삼아 크고 좋은 계책 올려 충성을 다해 보세 <群公念此以爲戒군공염차이위계 嘉謀大猷須盡誠가모대유수진성>
기술되고 있는 다산의 음식시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雪夜閣中賜饌 恭述恩例) >는 1789년 겨울에 지은 시이다. 1789년은 28세에 다산이 갑과(甲科)에 합격하고 규장각에 배속되었던 해이기도 하다. 1788년 기유년에 시詩 <인일에 성정각에서 임금을 뵙고 물러나와 짓다[人日誠正閣上謁 退而有作>를 짓고 1789년에는 모두 34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한해의 가장 마지막에 짓게 된 시詩가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雪夜閣中賜饌 恭述恩例) >이다. 2.3 공동식사의 공간
다산시에서 확인되는 공동식사의 공간은 고립된 공간인 궁궐로 확인 된다. 정조가 규장각 숙직 문신들에게 너무나 뜻 밖에 내려주신(천강天降Falling from the Sky) 진기한 음식(진수珍羞)이 규장각에 이미 도착했다고 다산이 기별을 통보 받은 것은 바람(풍風) 잦아 들고(정靜)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창(조창雕窓)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창(조창雕窓)에는 눈이 온통 하얗게 내려 앉아(사사簁簁)다고 다산이 시에서 서술하고 있다.
창덕궁에 지워진 건물들은 왕의 집무 공간(전殿)이거나 침전(전殿)의 창살은 꽃문양이 들어간 조창(雕窓)이였고 일반 관리들의 건물은 조창(雕窓)이 엄격히 제한 되었다. 이러한 정황속에서 바람이 자자들어 고요한 조창(雕窓) 밖에 눈이 쌓인 모습을 다산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산은 정조가 음식을 내려주었다는 기별을 받았다.
하지만 다산은 규장각에 있지 않고 다른 공간에서 업무를 보다가 왕의 집무 공간(전殿)을 지나가면서 눈이 궐 안에 백옥처럼 쌓인 것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있다.이날 이후의 다산시에서는 달빛 조차 숨어 버리고 눈만이 쌓인 궁궐내에서 다산 스스로 음식을 정조가 내렸다는 기별을 받고 황망히 움직이다가 이마를 궁궐 어디에선가 찧어서 다음날 약을 바르고 정조를 다시 만나게 된다. 정조와 문신들에게 다산은 놀림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을 다산이 직접 밝히고 있다.
(사사簁簁에서 사簁는 대나무로 만든 가루를 곱게 칠 때 사용하는 <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눈이 하늘에서 계속해서 내려오는 모습을 강조하기위해 <사簁>가 반복되어 <사사簁簁>라는 표현을 다산이 사용하고 있다.)
청(清)나라 시인 두준杜浚(1611~1687)의 시에도 내리는 눈과 관련된 <사사簁簁>의 표현이 확인 된다.<<揚州雪>>诗/ 雪下白簁簁
<사사簁簁>는 표현은 곽말약(郭沫若, 1892∼1978)이 지은 중국 현대 희곡 <탁문군(卓文君)1923>속에서도 확인 되는데 물고기가 튀어오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鱼尾何簁簁물고기는 어찌 그리 튀어오르나 )
<탁문군(卓文君)>속에서 한자어 <사사簁簁>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하늘에서 지상으로의 하강을 의미 하지 않고 물위를 튀어 오른 물고기가 다시 물속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자연 스럽게 보인다. 이 경우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다시 떨어지는 <물고기의 꼬리 지느러미>는 모두 <하강>이라는 의미를 공유하게 된다.)
문양이 조각되어 있는 창(조창雕窓)에는 눈이 온통 하얗게 내려 앉는 겨울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다.
정조가 규장각 문신들에게 내린 음식은 10명(십인十人)이 들어서 운반해야(경擎) 할 정도로 야찬夜餐치고는 내용물과 부피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다산이 아직까지 도착하지 아니했으므로 숙직을 서고 있던 여러 문신(제공群公)은 다산이 오기를 기다렸다(대아待我). 다산이 막 도착하자마자 비로소(재纔/겨우재/밤색삼) 여러문신들이 잔(굉觥)을 돌리기 시작한다.(전傳)
정조가 깊은 겨울 밤에 내린 음식물가 운데에 술(酒)이라는 명물名物은 확인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잔을 돌린다는 전굉傳觥의 표현이 확인 된다. 사찬賜饌으로 내려진 술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전굉傳觥이라는 표현을 이해 할 수가 없다. 내려진 음식이 규장각에 운반되어 있었을 때 다산은 규장각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기별을 통보 받고 공동식사를 위한 장소 규장각으로 이동해서 늦게 도착했음이 확인 된다. 다산이 규장각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다가 비로소 잔을 돌렸다는 표현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 까 ? 술잔을 지칭하는 작爵, 고觚, 치觶,각角,굉觵가운데 유독 술잔을 지칭해서 전굉傳觥이라고 다산이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일까 ?
다산은 그 근거를 자신의 저서 아언각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우리나라 풍속(東俗)에 어린아이(몽蒙)를 가르치는(훈訓)경우 (술을 따라 담는 것을) 술잔(주잔酒盞)이라고만只有 한다. 시경의 주남周南ㆍ권이卷耳에 관한 주석疏에 의하면 일승一升을 작爵(청동)이라고 하고 2승二升을 고觚(사각형 모양)라고 하며 3승三升을 치觶(뿔잔)라고 하며 4승四升을 각角이라고 한다.
5승五升을 산散이라고 한다. 자서字書에 의하면 1승一升을 작杓(자루 북두칠성)이라고 하고 4승四升을 치巵(술이 차면 기울고 술이 비면 바로서는 구조의 (옥)술잔/灌滿酒就傾斜 卮不灌酒就空仰著, /치언巵言/설문해자에 의하면 모양이 둥글다)라고 하며 7승七升을 굉觥이라고 한다. 배杯(단위)와 상觴(술잔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다)을 모두 잔總名을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夏나라에서는 잔琖(옥술잔)이라고 했고 은殷나라에서는 가斝(옥잔/신에게 복을 빌다)라고 했다. 주周나라에서는 작爵이라고 햇다.
새의 모양象雀之形을 본뜬 것을 작爵이라고 했고 육고六觚를 고觚라고 했으며 짐승의 모양象獸之形을 본 뜬 것을 가斝라고 지칭 했다. 또한 벌주罰酒를 굉觥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雜纂集 二 / 雅言覺非 卷之二 盞篙
東俗訓蒙,酒只有盞,【與琖同】 船只有篙,【方言沙牙大】 何以文矣。〈周南ㆍ卷耳〉疏云:“一升曰爵,二升曰觚,三升曰觶,四升曰角,五升曰散。” 字書云:“一升曰杓,四升曰巵,七升曰觥,而杯與觴,爲其總名。” 雖諸說不同,而其以大小異名則審矣。【今燕市賣酒,亦大小異器,以斤兩爲差】 又夏曰琖,殷曰斝,周曰爵。【《說文》云】 則三代各異名矣。又象雀之形謂之爵,六觚曰觚。【梔子亦六觚,巵所以名】 象獸之形謂之斝,罰酒曰觥。【黌舍所用謂之觵,觥與觵通】 彝者,彝尊也。罍者,雷尊也。尊者,大器也,今竝訓之爲盞,可乎?○進船之具,亦各殊用。櫂ㆍ檝,一類也。【劉熙云:“在旁撥水曰櫂。又短曰楫,長曰櫂。”】 櫓ㆍ槳,一類也。【在尾曰櫓,在旁曰槳。故縱曰櫓,橫曰槳】 橈ㆍ枻,一類也。【皆似楫而小】 皆所以撥水進船也。船尾曰梢,【今作艄】 正船曰柁,【今作舵】 其所以刺船使進者,唯篙而已。【進船竿】 《揚子方言》云:“所以刺船者,謂之篙。” 今俗以櫂ㆍ楫諸字,竝訓爲進船之竿,【訓云沙牙大】 却以篙爲篷,訓之爲覆器》:「貴者獻以爵,賤者獻以散。」鄭玄註:「凡觴,一升曰爵,二升曰觚,三升曰觶,四升曰角,五升曰散。船之物,誤矣。【此方無竹,皆以木爲篙。故不知篙爲進船竿】
장기 유배시기에 다산은 정조 19년 1795년 정조와 다산을 포함한 문신들이 춘당대에서 상화조어(賞花釣魚)의 잔치에 참여했던 기억을 회상한다 . 부용정 노래(芙蓉亭歌)라는 제목으로 시를 짓는다. 안주는 조고棗糕와 귤병橘餠까지 그 기록이 확인 되는데 여기서 다산은 술잔을 굉觥으로 표현하지 않고 작爵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爵은 벌주를 위한 술잔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 된다. 하은주 삼대가 술 잔에 대한 지칭이 서로 달랐다則三代各異名矣. 교육기관인 횡사黌舍에서 사용하는 술잔은 굉觵이라고 했는데 굉觥과 굉은觵 의미가 상통하는 한자어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의하면 고觚、치觶、각角、산散등을 모두 통칭해서 작爵이라고 한다(.總名曰爵。」예기禮記의 의례 기물禮器편에 의하면 신분이 귀한자貴者에게는 작爵을 바치고獻貴者獻以爵,신분이 천한자賤者에게는 산散을 바친다고 했다。
정현鄭玄은 다음과 같이 주註를 달았다 무릇 술잔凡觴의 총칭은 다음과 같다.(상효觴肴)일승을一升 작爵이라고 하고 ,이승을二升 고觚라고 하며,三升삼승을 치觶라고 하며,사승을四升 각角이라고 하며 ,五升오승을 산散이라고 칭한다. “
전굉傳觥은 공동식사에 늦게 도착한 구성원 또는 참가자에게 내려지는 벌주를 의미하고 있다. 10명이 운반 할 정도의 사찬賜饌은 정조에 의하여 내려졌다. 등가치의 교환이라는 상품경제의 구조에서 내려진 것이 아니라 선물경제의 구조속에서 음식이 내려졌고 규장각 문신들은 외견상 어떤 댓가없이 호혜성을 지닌 체 내려 지는 음식물의 수증을 거부하거나 부정 할 수는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통상 증여는 수여자가 수여 해야만 하는 의무, 수여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야 하는 수증자의 의무, 그리고 수증자는 암묵적으로 자신이 수증한것과 동일하게 경우에 따라서는 수증 받은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답례해야 할 의무 이 세가지의 의무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 규장각의 문신들은 수증자 정조로부터 내려지는 음식물을 조건없이 수증할 의무(obligation)만을 지니고 있을 뿐, 어떤 강제 없이 수여자 정조로부터 자발적으로 주어지는 음식을 아무런 댓가 없이 자신에게 할당된 음식을 향유하기만 된다. 아무런 댓가 없이 증여되는 음식을 향유해야 할 의무(obligation)를 지닌 규장각 문신들은 하사되는 음식물보다 공동식사의 장소에 늦게 도착해서는 않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벌주는 향유의 의무관계를 위반한 참여자의 행위사실을 의무의 강제력이 다시 부정하는 이중의 부정성이다.
벌주가 지닌 이중의 부정성은 정조에 의해 사찬賜饌된 음식물에 대한 답례가 규장각 문신들에 의해서 행하여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 난다. 외형상 자발적으로 주어진 다산음식시속에서 찬사된 음식물의 답례는 영원히 지연된다. 다산 음식시 마지막 부분에서 <크고 좋은 대책을 올려 임금님을 보필하자(嘉謀大猷가모대유)>는 다산의 표현도 사찬된 음식물에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답례라고 할 수 없다. 증여된 것의 답례가 시간의 축속에서 항시 지연되는 것은 순수증여가 된다. 경제학에서의 선물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한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로 물건이 자발적으로 이전>으로 규정된다. 이 경우 이동된 물건은 증여자가 소유하고 있는 소유물을 의미하게 된다. 경제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도 <증여자><수증자><답례>의 연쇄적 구조 속에 존재하는 상호교환에 주목하고 이 세 가지의 관계성속에서 상호성을 해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산시에서의 정조의 음식물의 증여의 관점은 <증여자><수증자><답례>속에 존재하는 상호성은 사회 내에 소속 된 개별자가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단순한 교환과정에 국한 되지 않는다.
<증여자>, <수증자> , <답례>사이에서 발생하는 의무관계는 시장 가치를 실현시키는 단순한 상품경제가 목표로 하는 상호 계약적인 시장가치만을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증여자와 수증자가 속한 코뮤니타스communitas들 사이의 단절을 허물고 상호에게 열린 감정가치valeur de sentiment를 생성한다. 서로 다른 부족, 젠더, 위계질서를 지니는 어떤 사회 내부 등에서 증여를 통해 생성되는 열린 감정은 각각의 코뮤니타스 사이에서 유대의 감정을 일으키고 의사소통을 증진 시킨다. 이러한 증여는 유용성과 교환이라는 공리주의를 기반으로한 경제학의 도식을 벗어나 있는 증여에 해당한다.
2.4 사찬된 음식물들
정조가 내린 음식에는 꿀로 떡의 소를 만들어 붉은 대추 고단糕團(송편?)에 대한 서술이 확인 된다.여기서는 고단糕團이 떡을 의미하는지 혹은 중국어 단어 그대로 해석해서 과자의 일종을 의미하는 지가 확인 되어야 할 것이다. (떡과 과자의 중간 형태의 음식물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푸른綠 연뿌리藕 細잘게 썰어切 <감자甘蔗>와 함께 삶아서 만든 음식도 정조가 내린 음식에는 포함 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자蔗는 원래 사탕 수수를 가리 켰다. 7언 절구 시의 형식을 고수하기 위해 사탕 수수를 가리키는 중국식 한자어 <감자甘蔗>에서 <감甘>을 의도적으로 생략해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다산이 표현 하고 있는 <감자甘蔗>는 물론 사탕 수수가 아닌 오늘날의 감자(potato/Kartoffel/17c/pomme de terre )를 의미한다.
다산은 감자에 대한 또 다른 한자어 <감저甘藷/단맛을 가진 마/고구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은풍殷豊은 당시 경상도 풍기군(豐基郡)에 속한 현縣을 가리 킨다. 한자어 <준시蹲柹>에서 준蹲(눌러 납작하게 하다)은 감의 가공 방법과 관련이 있다.<준시蹲柹> 감의 껍질을 벗겨서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눌러 말린 감이다.
정조가 하사한 음식 가운데 은풍殷豊 지역에서 생산 되는 <준시蹲柹>가 상위에 올라와 있 는 것이다.반시는 모양이 편편하고 넓은 것, 조홍(早紅)은 음력 6월에 익는 작은 것, 홍시(紅柹)는 아직 익지 않았을 때 따서 따뜻한 곳에 두어 절로 붉게 익힌 것, 건시(乾柹)는 곶감, 백시(白柹)와 황시(黃柹)는 볕에 말린 것, 오시(烏柹)는 불에 말린 것, 준시(蹲柹)는 건시를 꼬챙이에 꿰지 않고 눌려서 편편하게 만든 것인데 다른 말로 시병(柹餠)이라고도 한다./물명고(物名攷). 다산은 은풍殷豊에서 진상된 준시(蹲柹)위에 도탑게(후厚) 하얀 흰색 가루가 뿌려져(발潑)있는 것을 서리(상霜)가 내려 앉은 것으로 표현 하고 있다. 울산에서 진상 된 감복甘鰒이라는 것은 마른 전복을 물에 불려 꿀나 기름, 간장 등에 재운후 공정을 거친 전복을 가리킨다. 본초 강목에서는 석결명(石決明)이라고도 지칭되고 자산어보에서는 복어鰒魚라고 지칭 된다.전복 껍질의 광택이 유려하기 때문에 글자字를 밝게明 비췰照 정도가 된다는 표현을 다산은 하고 있다.
1801년 2월 27일 다산은 출옥되어 장기(長鬐/오늘날의 포항 부근)로 유배 된다. 짧은 장기長鬐의 유배 생활중에 《이아술(爾雅述)》 6권과 《기해방례변(己亥邦禮辨)》을 지었다. 아울러 전복을 채취하는 묘사가 정밀한 시 한편을 다산은 남기고 있다. 물질을 하는 며느리를 아가兒哥라고 장기지방에서는 지칭하는데, 몸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짠바다를 들락거린다고 다산은 해녀를 서술 하면서 채취되는 전복은 손바닥같이 크고 구멍이 아홉게나 되는데 토호 양반의 안주감으로 쓰이고 있다고 부연하고 있다. 전복을 채취하는 해녀의 위태로움이 벼슬자리를 얻기 위해 권문세가에 아첨하는 양반들의 허우적거림,즉 수수(泅水.헤엄)와 대비를 이루어 표 현되고 있음이 이 시에서 확인 된다.
전복에 이어 다산 음식시에서 확인되는 음식은 돼지고기를 원료로한 음식이다. <멧돼지 배를 가르고 쌀진 곰고기를 굽고, 넙치 말린 포에다가 고등어도 겸하였다네 (山猪割肪熊爇爒<산저할방웅설요> 比目之腊重脣鯖<비목지석중순청> )
산저山猪는 야생에서 서식하는 멧되지를 의미하는 한자어이다. 산저山猪와 대비되는 한자어는 가저家猪이다. 정조는 규장각에서 밤새워 숙직을 서고 있는 관리들에게 돼지고기를 요리해서 찬으로 내려 주었는데 다산의 시詩에 의하면 돼지고기의 재료가 멧돼지임을 알 수 있다.
멧돼지를 도축하는 방식은 맹자에서 확인 된 바 있는 동사 포주庖廚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한자어 포주庖廚는 생명 있는 동물을 직접 도축하는 것이므로 그 사용을 피하고 고기를 여러 조각으로 분할하는 의미를 지닌 동사 할割을 사용했다.(산저할山猪割)
방웅肪熊은 여려가짐 의미를 지니는 한자어이다. 첫 번째의미가 방웅肪熊이라는 한자어 자체에만 주목해서 번역하면 <곰熊의 기름肪>을 의미하게 된다.
두 번째의미는 방肪을 기름이 아닌 <살이 찐>으로 해서 해서 방웅肪熊을 <살찐 곰고기>또는 <곰고기>로 해석 할 수가 있다.
세 번째 의미는 방웅肪熊을 첫 번째 번역처럼 <곰熊의 기름肪>으로 일단 번역하되 당송 팔대가 중의 하나인 송나라때의 소철苏辙의 문집에서 확인되는 곰기름에 대한 또 다른 한자어 <웅백熊白>으로 치환해서 해석하는 경우를 그 실례로 들 수 있다. 《移馆园中每御赐相国酒馔赋述盛事》诗:“餦餭堆案熊肪白,仙果承筐鹤顶丹。
소철苏辙의 시에는 <웅방백熊肪白곰의 하얀 색 지방)이라는 표현이 확인 된다. <웅방자熊肪白>를 두 한자어로 줄여서 <웅백熊白>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동물성 지방의 색깔이 대체로 흰 색을 띄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지만 소철苏辙의 시에서 확인 되는 <웅방백熊肪白>은 단순히 색깔만 하얀 곰의 지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대로부터 중국에서는 겨울 잠을 자기위해 배나 목주변에 에너지원으로써 지방을 저장하는 곰의 지방을 가장 별난 맛을 지니는 별미로 여겼다.
여기서 우리의 고민은 다산시의 본문에서 확인 되는 한자어 방웅肪熊을 상당히 비유적인 의미를 지니는 <가장 별난 맛>으로 해석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 고전 문헌에는 방웅肪熊이라는 한자어는 확인 되지 않는다. 웅지熊脂는 확인 된다. 소철 苏辙의 시에서 확인되는 <웅백熊白>이라는 단어는 이덕무의 문집가운데서 칠언고시인 성시전도(城市全圖)에서 확인 된다.
~ 생략 ~
북쪽 산은 백악처럼 좋은 것 없고 / 北山無如白岳好 우편으로 인왕산을 끼었으니 백중과 같네 / 右把仁王伯仲似 영특한 기운 모여 돌빛이 푸르르니 / 英靈所鍾石氣靑 그 아래 기이한 선비가 많이 난다네 / 其下往往生奇士 남쪽 산은 자각처럼 수려한 것 없어 / 南山無如紫閣秀 푸른 기운 하늘에 솟았으니 하늘도 지척이라 / 翠眉浮天天尺咫 이것이 달아나는 말이 안장을 벗는 형국인데 / 云是奔馬脫鞍形 평안도의 봉홧불을 남쪽 변방에 알린다 / 平安火擧通南鄙 동쪽 산은 낙봉처럼 묘한 것이 없어 / 東山無如駱峯妙 공자의 사당이 그 기슭에 자리하고 있네 / 玄聖門墻枕其趾
~생략
거리 좌우에 늘어서 있는 천간 집에 / 沿街左右千步廊 온갖 물화 산처럼 쌓여 헤아리기 어렵네 / 百貨山積計倍蓰 비단 가게에 울긋불긋 벌여 있는 건 / 錦肆紅綠班陸離 모두 능라(綾羅)와 금수(綿繡)요 / 紗羅練絹綾縠綺 어물 가게에 싱싱한 생선 도탑게 살쪘으니 / 魚肆新鱗足珍腴 갈치ㆍ노어ㆍ준치ㆍ쏘가리ㆍ숭어ㆍ붕어ㆍ잉어이네 / 鮆鱸鰣鱖鯔鮒鯉 쌀가게에 쌓인 쌀 반과산 같으니 / 米肆隣近飯顆山 운자 같은 흰밥에 기름이 흐른다 / 白粲雲子滑流匕 주점은 본래 인간 세상이나 / 酒肆本自人間世 웅백성홍(熊白猩紅)의 술빛 술주전자에 가득하네 / 熊白猩紅滿滿匜 행상과 좌고 셀 수 없이 많아 / 行商坐賈指難僂 자질구레한 물건도 갖추지 않은 것 없네 / 細瑣幺麽無不庀
이덕무의 문집속에서 확인되는 웅백(熊白)은 곰의 지방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곰의 지방이 흰색인 것을 빗대어서 그 색깔이 흰 것을 강조해서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따라서 한자어 웅백(熊白)과 연이어서 쓰여진 한자어 성홍(猩紅)은 오랑우탕빛깔(猩)의 붉은 색(紅)을 의미한다.
다산은 자신의 시에서 곰의 기름을 의미하는 중국식 한자어 웅백(熊白)을 사용하지 않고 방웅肪熊이라는 조선시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앞에서 확인 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문장 <山猪割肪熊爇爒산저할방웅설요>에서 고기요리의 식재료인 <산저방웅山猪肪熊/멧돼지와 곰의 하얀색 비계>는 중국 당나라와 송나라때의 문인들의 문집 기록에 빈번하게 그리고 애용되는 표현(favorite expression)이라는 점을 참작한다면, 다산이 그의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산저방웅山猪肪熊>은 <돼지고기요리와 참으로 진묘하고 맛보기 힘든 고기요리>로 해석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산이 명례방 근처나 회현근처의 집으로 이주하여 살면서 성균관 유생으로 있거나 혹은 과거에 급제한 이후에도 생활은 핍절했다. 다산의 계집종이 숭례문 앞 저자거리에 새벽이되어 임시 어물전이 열리게 되면 한 두 마리 생선을 구해서 먹는 것이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법이였 다. 다산은 성균관유생으로 과거시험을 준비 할때는 아침과 저녁식사는 도기에 표기하고 식사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궃은비가 내려 성균관에서 회현의 다산의 집까지 길이 끊기고 도성안에도 밥짓는 연기가 사라진 어느 날 다산이 성균관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몇 일전부터 곡식이 떨어져 호박으로 죽을 쑤어 다산은 겨우 허기를 면하게 되는데 , 확인해보니 몇일 동안 집에 심어 자라난 어린 호박은 모두 따서 죽으로 먹게 되고 지금 먹은 호박죽은 계집종이 남의 것을 훔쳐와서 죽으로 끓인 것이 였다. 호되게 회초리를 맞는 계집종을 안스러워 하는 시 한편을 다산은 남기고 있다.
호박 넋두리[南瓜歎]
궂은비 열흘 만에 여기저기 길 끊기고 / 苦雨一旬徑路滅 성 안에도 시골에도 밥 짓는 연기 사라져 / 城中僻巷煙火絶 태학에서 글 읽다가 집으로 돌아와 / 我從太學歸視家 문 안에 들어서자 시끌시끌 야단법석 / 入門譁然有饒舌 들어보니 며칠 전에 끼니거리 떨어져서 / 聞說罌空已數日 호박으로 죽을 쑤어 허기진 배 채웠는데 / 南瓜鬻取充哺歠 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할꼬 / 早瓜摘盡當奈何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직 안 맺었네 / 晩花未落子未結 항아리만큼 커다란 옆집 밭의 호박 보고 / 隣圃瓜肥大如瓨 계집종이 남몰래 그걸 훔쳐 가져와서 / 小婢潛窺行鼠竊 충성을 바쳤으나 도리어 맞는 야단 / 歸來效忠反逢怒 누가 네게 훔치랬냐 회초리 꾸중 호되네 / 孰敎汝竊箠罵切 어허 죄 없는 아이 이제 그만 화를 푸소 / 嗚呼無罪且莫嗔 이 호박 나 먹을 테니 더 이상 말을 말고 / 我喫此瓜休再說 밭 주인에게 떳떳이 사실대로 얘기하소 / 爲我磊落告圃翁 오릉중자 작은 청렴 내 아니 달갑다네 / 於陵小廉吾不屑 나도 장차 때 만나면 청운에 오르겠지만 / 會有長風吹羽翮 그게 되지 않으면 금광 찾아 나서야지 / 不然去鑿生金穴 만 권 서적 읽었다고 아내 어찌 배부르랴 / 破書萬卷妻何飽 밭 두 뙈기만 있어도 계집종 죄 안 지었으리 / 有田二頃婢乃潔 돼지고기를 주원료로 정조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혹은 순수하게 증여된 음식은 돼지고기를 표상하는 저육猪肉으로 표기 될 수 없고 肪熊방웅으로 상징화되고 기표화 된다. 증여된 돼지고기 요리는 肪熊방웅이라는 기표속에서 비 대칭적인 호혜성이 확인이 되며 영원히 시간속에서 지연되는 순수증여로 존속한다. 이러한 증여 즉 肪熊방웅은 냉철한 거래transaction가 아니라 도덕적 감정의 유대라는 지반 속에서 놓여져 있다. 도덕적 감정의 유대는 절연된 코뮤니타스의 구성원들 사이에 관계를 회복하고 통합 시킨다
마르셀 모스가 증여론 속에 규명하고 있는 증여개념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와 사회학자 심리학자들 사 이에서 다양한 해석학적 논쟁을 야기 시켰다. 증여론을 프랑스학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담담했던 레 비스트로스Levi-Strauss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개념을 근친상간의 금기를 위해 다른 씨족관계로부터 결혼 할 여자를 서로 교환하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레 비스트로스Levi-Strauss는 인류학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디유bordieu는 증여를 통해서 전달되는 선물을 증여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본의 형태로 규정하면서 수증자에게 증여자가 요구하는 상징적인 세금과 유사한 것으로 증여행위를 규정한다.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선물은 대가 없는 증여이며 만약 증여자가 보상을 기대하거나 받는 자가 돌려주어야 할 채무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증여된 선물은 더이상 선물이 아니라고 주장 한다. 데리다는 증여가 목적 없는 증여가 되기 위해서는 <되돌려 받는 것을 전제 하지 않는 증여>, <보상 없는 소비>, 그리고 <부채감 없이 자발적으로 수증자가 선물을 받기>이 각각 증여의 계기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이러한 계기가 성립 할 수 없으므로 선물은 교환이나 증여 그리고 수용도 불가능하게 된다.
데리다의 입장은 증여되는 선물을 비회귀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비경제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 데리다의 주장을 따라가면 우리는 선물을 일종의 선험적 가상, 다시 말해 데리다의 용어로 <불가능성자체>라는 규정에 도달하고 만다. 마르셀 모스가 연구했던 영역은 증여나 증여된 선물에 관한 이론적 철학적 규정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의 원시부족과 북아메리카 인디언 그리고 남태평양의 부족과 같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코뮤니타스라는 공동체였다. 마르셀 모스의 <</u>증여>는 보편적 개념이 아니다.
마르셀 모스는 서로 다른 공동체내에서 일어나는 <총체적 사회적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증여를 서술한다. <총체적 사회적 사실>에서 <총체적>이라는 단어는 보편 개념이 아니다. 유적 보편성으로 통합 될 수 없는 타자성을 <총체적>이라는 단어는 내포하고 있다. 구조가 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규범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나가는 말
뒤르껨의 종교사회학의 대변자인 메리 더글라스는 마르셀모스의 증여론 영어판 서문에서 순수증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모든 증여에는 시간의 지연속에서 증여되는것과 동일하게 혹은 좀더 가치 있는 것으로 답례 될 것이라는 은폐된 기대가 증여자의 의도 속에 담지되어 있다고 그녀는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다. 증여자가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증여행위를 행하는 경우에도 자발적 증여는 수증자에게 증여되는 순간 증여자의 자발적 의도와는 별개로 수증자는 증여되는 것을 ( 가시적인것과 비가시적인것, 의례, 음식,춤, 노래등)통해서 증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무와 자신이 받은 것을 동일한 가치의 것으로 혹은 자신이 받은 것이상의 것으로 답례해야 한다는 의무의 관계에 놓이게 된다.
수증자가 증여자에의하여 증여된 것을 증여된 즉시 답례한다면 다시 말해 시간의 지연 없이 즉시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답례를 한다면 이경우 증여된 것과 답례로 되 돌려 진 것은 단순한 교환에 불과 한것이지 선물이나 증여의 의미를 지닐 수 없게 된다. 다산 음식시에서 확인 되는 것처럼 규장각 문신들에게는 증여자 정조에 의해 (자발적으로) 음식이 주어지고 ,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즉시 규장각 문신들에 의해 증여된 음식은 답례로 증여자인 정조에게 다시 반환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답례가 지연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연되는데, 역설적으로 답례가 시간의계기 속에서 영원히 지연되는 경우에만 비대칭적 교환체계인 순수증여는 존립 할 수가 있다.
규장각 문신들은 증여자에 의하며 주어지는 것을 수증 할 수 있는 의무만을 지닐 뿐 답례 해서는 않되며 답례 할 수도 없다. 수증할 의무만 존재하는 순수증여체계속에서 규장각 문신들이 증여자에게서 내려 받은 음식들은 음식의 표상을 넘어서 상징화 되어진다. 비대칭적 구조속에서도 증여자인 정조와 수증자인 규장각 문신들사이에 상호성은 답례되지 않는 것을 통해서 공고해진다. 상징화된 음식은 증여자 정조와 수증자 규장각 문신사이에서 음식이상의 것을 교환가능하게 한다.
상징화된 음식은 기표화 된다. 답례되어야 한다는 반환의무와 상관 없이 주어진 음식은 코드가 독해된다(decode). 증여자가 참여 하지 않는 규장각 문신들의 공동식사는 벌주를 포함한 상호 행동(interaction Rituals)즉 의례儀禮의 형식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감정적 공감이 확인되고 있다. 증여자인 정조가 자신이 향유 할 수 있는 재화를 정치적 위계질서가 다른 층위의 사회 구성체인 규장각 문신에게 재분배의 형태로 할당하고 복종을 강요하거나 정치적 봉무에 대한 강제를 요구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조에 의해 음식이 규장각 문신들에게 증여되는 음식물은 월별로 일정한 삭선 그리고 국가적 선물경제의 구조속에서 작동하는 진상제도를 공급 될 수 있었다. 각 도(道) 단위로 관찰사·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 등이 중앙의 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사도시(司䆃寺)·사재감(司宰監)·사포서(司圃署)·의영고(義盈庫)에 전국으로부터 진상품이 바쳐지고 최종적인 소비를 위해 궁중으로 조달된다. 증여된 음식에는 진상이라는 예물의 성격보다는 사실상 국가적 강제력이 동원된 공물(貢物)의 셩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증여된 음식은 국가적 강제력이 매개되어 있다. 아울러 깊은 겨울에 궁궐의 관료에게 증여자 정조에 의해서 증여된 것이므로 정치적인 것이기도하고 , 내려진 음식을 일정한 의례에 의해서 공동식사의 형태로 소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의례적인요소가 증여된 음식에는 포함되어 있다. 증여된 음식을 즉각적으로 답례 할 수는 없으며 답례가 무한히 시간의 계기 속에서 지연되면서 비 대칭적인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답례에 대한 의무가 영원히 지연되는 동시에 수증자인 규장각 문신들에게는 증여된 음식은 상징적으로 기표화되어진다.
상징적으로 기표화된 음식은 공동체내의 유대감을 강화하게 된다. 증여되는 음식에는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법률적인것, 의례적인것등 여러 차원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가운데 어느 하나로 축소 될 수 없다. 독립적인 여러 차원의 사회적 현상들을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로 규정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르디에, 자끄 데리다등의 증여 대한 논의는 증여개념을 인류학적 필드를 고려하지 않은 철학적 개념으로써 다루고 있다
이 두 학자는 마르셀 모스가 증여는 보편적 개념이아니라고 증여론에서 논술하고 있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을 명확한 현상과 분리해서 순수한 이론적 개념으로 제시 할 수는 없다. 증여 혹은 순수증여의 철학적 정의 가능성을 규명하기보다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들로서 증여가 발생할때,자발적인 증여자의 의무 , 수증자가 증여된 것을 받아야하는 의무, 그리고 증여된 것을 답례로 되돌려 져야 하는 의무들이 어떻게 발생하고 상호간의 의무들이 어떤 구조를 생성하는지를 고찰해야 한다.
본 논문은 다산의 음식시를 증여론의 관점에서 기술하고 고찰하면서 다산의 음식시속에 내재하는 다양한 총체적 사회적 사실들을 구조화해보려는 시론적인 시도를 해 보았다. 증여론의 권두언을 작성 했던 레비스트로스는 1924년이후 구조주의 인류학의 관점에서 사회 생활을 상징적 관계들의 세계로 정의한다.
상징체계들은 무의식적인 정신구조에 의해 규정된다고도 언급한다. 무의식을 사회현상들에 특유한 그리고 공통적인 특징을 결정하는 인자로 수용한다면 인류학은 단순한 인간 행위의 의미를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 그 행위를 만들어 내고 배열하는, 배후의 숨겨진 보편적 질서를 탐구하는 학문이 될 것이라고 레비스트로스는 단언하고 있다. 교환이나 증여를 가능하게 만드는 보편적 질서, 혹은 교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연구는 논문의 과제 상황으로 남겨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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