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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고 속보이는 유시민의 작가 자칭
  • 박경범 기자
  • 등록 2026-07-24 23:46:54
  • 수정 2026-07-25 00:11:23
  • 은퇴 정치인에서 곧바로 ‘유명원로작가’로 변신

유시민은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所謂 작가활동으로 쌓은 명성은 아니다. 물론 몇몇의 저서를 성공적으로 판매하기는 했다. 하지만 專門著書에서 그 以上의 성과를 올린 전한길씨 등도 보통 소설가나 화가 등에 붙이는 작가를 자처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일반인의 눈높이에는 높은 성취인 前장관이나 前국회의원의 자격보다는 제 한 몸 생계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해 隔年으로 나오는 예술지원금이나 목 놓아 기다리는 하급 생활인이 非一非再한 직업群의 一員을 자처하는 것이다. 원하면 과거의 노무현재단 理事長처럼 번듯한 사회적 직함도 얼마든지 얻을 위상이면서도 굳이 그런 직업군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작가’라는 것은 ‘그저 작가’와는 하늘과 땅차이의 위상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포석은 이미 오래된 것이었다. 과거 이문열 作家가 정치판에 약간의 영향을 주는 중에 ‘호모 엑세쿠탄스’라는 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유시민은 ‘정치 이야기를 써놓고는 문학이라고 한다.’며 포문을 연 바 있다. 당시엔 필자도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후 ‘이문열의 삶과 문학세계’ 평론소설집을 쓰면서 읽어보니 비록 ‘사람의 아들’의 ‘現世態버전’으로서의 作爲性이 심한 면은 있었으나 그렇게 특정 정치진영의 편을 든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었다. 즉 유시민은 그 책을 읽고 느낀 바를 밝힌 것이 아니라 당시 작가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문열을 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방을 노릴 기회를 기다리다가 쳤던 것이었다. 

바라는 바는 前장관 前국회의원의 은퇴 정치인의 모양새보다는 평생을 순수한 열정과 眈美主義 정신으로 인간을 探究해오며 예술활동을 했던 유명작가로서의 자격이 더 사회에 영향력이 있으리라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과거 프랑스의 에밀졸라처럼 國家大事에 여느 정치인보다 큰 영향력을 가진 시대의 양심이며 사회의 어른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하는 일은 줄곧 정치적 영향력이다. 정치판엔 아직도 현역의 동년배가 즐비한 상황에서 그저 ‘동등한’ 政治人 동료로서 상대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작가라는 이미지를 업고 하는 것이 영향력이 돋보이리란 계산도 작용하는 것이다. 

 

참고글 : 

2007/04/09 (월) 18:58 

文人들에 놀아난 손학규

우리의 문인은 ‘에밀졸라’나 ‘싸르트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손학규 전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 한동안은 그 자체로 기사거리가 되더니 이제 잦아드는 느낌이다. 동시에 정치인 손학규는 이제 관심의 축에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손전지사의 결단에는 문화인들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소설가 황석영이 결정적 조언을 했다고 하며 탈당 이후에도 시인 김지하를 만나 지지의사표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에 앞서 베스트셀러 작가 김진명이 <나비와 청산가자>라는 소설로 손전지사의 탈당과 대통령당선의 시나리오를 제시함으로써 손전지사의 행로를 미리 引導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로 미루어 손전지사의 주위에는 영향력 있는 문화인들이 강력히 포진하고 있음을 새삼 알 수 있다. 그리고 필자가 사석에서 들어본 바로는 손전지사는 유명만화가 이모씨와도 친분이 있다 하니 실로 손전지사는 문화계 全般을 아우르는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일반적인 통념으로 문인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의 지지는 순수성의 명분을 얻기에 유리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은 문인은 세상의 흐름을 通察하는 안목을 지닌 賢者로서 인정되면서, 또한 이미 상당한 명성을 가진 자로서 여타의 私慾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아지기에, 그 견해의 현명함과 순수성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문화선진국 프랑스에서 에밀졸라, 싸르트르 등의 문인은 국가사회의 중요한 事案에 ‘현명하고도 순수한’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국가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곤 했던 것이다.

‘문인들로부터 영향 받은’ 손전지사의 결단 또한 그와 같은 기대 위에서 행해진 것이라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는 것이 바로 문화선진국에서의 문인의 위치와 우리사회에서의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통찰적 세계관을 가지고 啓導的 역할을 하는 선진국의 문인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多衆의 興味誘發의 노하우 이외에는 특별한 慧眼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문인들임을 알았어야 했다.

일찍이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수단이 없는 것을 가엾게 여겨 국가지도자를 제외한 상민과 천민들을 위해 만든 글자를 使用하여, 모든 知的, 哲學的 槪念의 표현이 제한된 범위 內에서 多衆의 흥미유발에 성공하여 명성을 얻었다하여, 그들에게서 세계를 통찰하는 관점에 말미암은 지혜를 구하려 한다는 것은 실로 緣木求魚임을 알았어야 했다.

손전지사의 경우는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앞으로 큰 뜻을 둔 정치인은 주변의 조언을 구할 때 그들의 피상적인 위치만을 믿고 경솔히 행동하는 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德目은 스스로 창의적인 지혜를 짜내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그것의 愚賢을 식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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