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_칸첸중가_012_룸부 셰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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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년 존, 고무장화를 신은 사내들, 그리고 일람에서 올라온 사내들과 작별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노란 꽃이 핀 유채밭 너머로 큰 마을이 보였다. 골케이를 떠난 지는 3시간쯤 지난 후였다. 역시 룽따가 펄럭이는, 굴뚝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들이 산비탈에 늘어선 그 마을 이름은 람만(2,560미터)이었다.
람만 마을 초입에서 오른쪽 언덕 위로 향했다. 장작 타는 냄새가 향수를 자극했다. 마당에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주막집 ‘셰르파 롯지’ 앞에 이르렀을 때, 내 어린 시절의 고모네 여인숙이 떠올랐다. 황소가 큰 수레 가득 굵은 참나무를 싣고 왔다. 고모부를 비롯한 어른들은 그 참나무들을 양지바른 처마 밑에 차곡차곡 쌓았다. 일부는 여인숙 뒤꼍의 장작 광에 쌓았다.
장작 광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2학년 2학기, 한 학기 동안 살았었다. 그 방은 원래 중학생 때 서울로 유학 간 사촌 형의 방이었다. 사촌 형은 장작 광에서 도끼로 참나무를 쪼개 만든 장작을 손님 방 아궁이에 때는 고모부의 일을 도왔다.
고모부는 평소 토끼나 새를 기르고, 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고모부는 꽃밭 가운데에 조그만 연못도 만들었다. 연못의 둘레는 우리나라 지도 모양이었다. 연못에는 붕어도 있었고 뱀장어나 미꾸라지도 있었고 방게나 소금쟁이도 있었다. 어린 나는 꽃밭 둘레에 친 흰 목책(木柵)을 넘어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연못을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 날은 긴 막대기를 휘저어 물고기들을 이리저리 몰며 못살게 굴고 있었는데 누가 뒤에서 내 귀를 아프게 잡아당겼다. 고모부였다. 대낮인데도 고모부는 취해 있었다. 고모부는 내 양쪽 귀뺨을 우악스러운 두 손으로 붙들어 번쩍 쳐들고는 내게 소리쳐 물었다.
“원산 앞 바다 뵈니?”
“명사십리 해당화 뵈니?”
“한아바지 뵈니?”
“한아바지 뭐르 하시니?”
귀 뺨만 아프고 뜨거웠지 보이긴 뭐가 보이나, 내 눈에는 북쪽을 향해 치달리는 산등성이 너머로 피난민 이불 보따리 같은 구름만 보였지만 거짓 대답을 했다. 원산 앞바다도 보이고, 명사십리에 해당화도 보이고, 한아버지(할아버지)도 보인다고 대답했다. 한아버지가 뭘 하시냐는 물음에는 얼결에 ‘걸어가셔요’라고 대답했다.
고모부는 대답에 만족했는지 나를 땅에 내려 주었고 나는 고모부로부터 멀찍이 달아났다. 그날부터였을까? 나는 해당화 핀 모래 해변을 걷는 어떤 영감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했는데, 그 영감님이 내 꿈에도 여러 번 나왔었다. 로지의 주인 룸부 셰르파를 처음 보았을 때도 나는 백일몽을 꾸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룸부 셰르파는 보면 볼수록 우리 고모부를 너무나 많이 닮았다.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이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인해 보이는 뼈대와 질긴 근육, 불거진 광대뼈와 날카로운 눈, 쇳소리가 나는 음성……. 그러나 웃는 모습은 더없이 순박해 보이는 그것까지 닮았다. 그것은 몽골리안의 공통적인 특질일지도 모른다.
룸부 셰르파는 60세라고 했다. 고모부는 그 나이에 이미 노쇠해졌지만, 룸부 셰르파는 나이답지 않게 건장했다. 그는 아직 해가 지기 전인데도 유쾌하게 취해서는 부인에게 술 한 병 더 가져오라고 청했다.
“이거 좋은 술. 이 집 말고는 맛볼 수 없어. 한 병은 공짜. 더 마시려면 돈을 내. 안 그러면 마누라가 미워해. 안 그래 임자?”
룸부 셰르파는 그러면서 동갑내기 부인의 커다란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룸부 네 술은 꼬도 락시였다. 꼬도라고 부르는 일종의 기장으로 만든 소주였다. 우리나라의 안동 소주보다 순도는 좀 떨어지지만 곡식을 원료로 한 증류주 특유의 향과 맛이 진하게 녹아 있었다.
룸부는 그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18세에 장가든 이후 60세가 되도록 사방 1백 리 밖으로는 안 나가 보았다고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모두가 그 마을에 있기 때문에.
“산 좋다. 밥 좋다. 술 좋다. 마누라 좋다. 친구 좋다. 하늘 좋다. 나무 좋다. 부처님 있다. 헤헤헤….”
술 취해서 바보처럼 웃는 룸부를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고모부를 떠올렸다.
고모부는 환갑 좀 넘어서 두 번째 온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무렵에 찾아갔을 때 고모부는 아파트 문간방 침대 위에서 벽을 보고 모로 누워 있었다. 고모부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디밀고 보니 고모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몸에서 눈물은 어찌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눈물로 죄를 씻을 수 있다면 고모부는 어떤 죄도 남김없이 씻고 세상을 떠났을 거다.
고모부는 걸핏하면 고모를 때렸다. 고모는 눈 밑에 멍이 들도록 맞고도 일은 쉬지 않았다. 한 손에는 달걀을 들고 눈 밑의 멍에 대고 굴리면서도 다른 한 손에는 걸레를 쥐고 방바닥을 닦던 고모. 고모부는 외아들도 장작개비로 마구 두들겨 팼다. 술 취해서 패고, 맨정신에도 팼다. 하도 패니까 저러다 맞아 죽겠다 싶었던 고모는 갓 중학생이 된 형을 서울에 하숙을 구하고 유학을 시켰다.
고모부네 옆집에 살았던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오십 리 밖의 다른 면으로 이사를 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의 누이가 노상 남편에게 매 맞고 사는 꼴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고모부는 북의 토지개혁 직후에 월남하여 경찰관이 된 분이었는데 하필이면 지리산 일대로 배치되었다. 고모부는 휴전 직후에 남원 경찰서에서 퇴직했다. 전쟁을 치른 군인과 경찰은 비록 몸은 멀쩡하다고 하더라도 트라우마로 인한 상이군인이라고 봐야 한다. 전쟁 통에 간신히 살아남은 시민들도 모두 상이 시민이라고 해야 옳다.
이제 고령에 이른 분 중에서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은 분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아버지도 전장에서 여러 번 죽을 뻔했다고 들었다. 칠흑 같은 밤에 비는 억수로 퍼붓는데 인민군과 국방군이 만나 뒤섞여버린 진창에서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우리 고모부는 또 지리산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내가 저녁 식사를 끝내자, 룸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누이동생 집에 놀러 가자며 일어섰다. 이미 어두워졌기 때문에 손전등을 켜 들고 따라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룸부의 누이동생은 부엌에서 술 고리 밑에 불을 때고 있었다. 구리로 만든 술 고리에서 훈훈하고 향기로운 꼬도 락시 냄새가 솔솔 났다.
술 고리를 얹은 화덕에서 타는 불꽃에 비친 늙은 남매의 얼굴은 사제처럼 경건해 보였다. 좁지만 아늑한 부엌 바닥에 나무 깔판을 하나씩 깔고 앉아서 금방 내린, 따뜻하고 향기로운 술을 흡족하게 마신 덕분에 그날 밤 잠결이 곱고 산뜻했다. <</span>계속>
사진은 소주 내리는 고리입니다. 맨 위의 깔대기 형 구리 솥에는 찬물을 붓습니다. 밑에 솥에서 올라온 증기 형태의 술 방울이 찬물이 담긴 깔대기에 표면에 맺힙니다. 밑에 있는 솥에는 '꼬도'라는 곡물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죽이 들어있고, 죽 위에는 깔때기에서 떨어지는 소주 방울을 받아 모으는 작은 소주 단지를 올려 놓았습니다. 작은 소주 단지는큰 솥 안에 있어서 이 사진에서는 안보입니다. 가장 고급 소주는 '띤 빠니'라고 부르는데, 이는 깔대기에 찬물을 세 번만 부어서 모은 소주를 의미합니다. 보통은 다섯 번 이상 찬물을 갈아주면서 소주를 모으는데, 이 것은 향도 맛도 '띤 빠니'에 못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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