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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Recognition)
  • 이종철 칼럼니스트
  • 등록 2026-07-29 23:23:02


한 때 소비에트가 붕괴할 때 당시 미국무성 괸리로 일하던 일본계 학자 프랜시스 후꾸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란 책에서 역사 발전에서 인정이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의 이런 생각의 뿌리는 20세기 초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인 알렉상드르 코제브에게 있었다. 코제브는 헤겔 전문가라 할 수 있는 데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인정 투쟁'을 강조한 것에 큰 영향을 받은 바 있다. 헤겔은 이 책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그의 자립성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서로 간에 이런 자립성을 받으려 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인정투쟁'이 벌어진다. 이 투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가 승리해서 주인이 되고 그나마 생명은 보존하려는 자가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헤겔에게서 타자의 인정은 한 인간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담보해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는 이러한 인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랑크 푸르트 학파의 3세대인 악셀 호네트는 헤겔의 인정 투쟁을 더욱 발전시켜 사회철학의 일반 원리로 삼고 있다. 홉스가 그렇고 마르크스도 그랬지만 푸코 역시 사회를 하나의 투쟁의 장으로 본다. 이런 투쟁의 동기는 억압이고 투쟁의 목적은 자기 보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호네트는 오히려 투쟁의 동기를 무시화 차별로 보고 이 투쟁의 목표를 인정으로 간주한다. 그는 한 사회에서의 성공적인 삶의 조건으로 사랑, 권리 그리고 사회적 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 형태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 속의 인간은 이러한 연대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구하고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호네트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문성훈 교수는 이 인정 개념을 <인정의 시대-현대 사회 변동과 5대 인정>(2014, 4월의 책)로 출간한 바 있다. 그는 호네트의 사랑, 권리, 연대라는 세가지 인정 형태를 좀 더 발전시켜 5대 인정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친밀성 영역, 정치적 의사결정 영역, 경제적 생산 영역, 문화적 유대 영역, 세계적 영역에서의 인정이라는 틀을 가지고 인간 사회 전반과 국가 간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인정의 원리를 확인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 첫장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답지 않는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이라고 적었다. 수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지만, 그 역시 문전박대를 많이 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박대를 당할 때마다 공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장면을 본 타인들의 시선을 참아 넘기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무시 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제국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이 잘 사용하는 방법이다. 공자 역시 의식적인 태도 전환을 통해서거나 아니면 고결한 인격을 통해 자연스럽게 극복을 했을지 모른다. 


공자가 인정이라는 개념을 노여움과 연관시켜 개인적 태도를 규정하는 자존감으로 삼았다면, 헤겔이나 후꾸야마, 그리고 호네트 같은 경우는 인간 관계 전반에 따른 사회 발전과 사회 작동의 원리로까지 포착하고 있다. 인정 개념은 그만큼 개인적 태도의 전향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철학적으로도 확장 가능성이 높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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