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철학 - 맛의 의미,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될까
캐롤린 코스마이어 (지은이),권오상 (옮긴이)헬스레터
원제 : Making Sense of Taste: Food and Philosophy (1999년)
해제
맛은 쾌락과 여성을 은유, 젠더적 사유로 정립한 음식철학의 고전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요리를 했더라면…”아마도 <음식 철학>의 학문적 계보와 위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음식과 페미니즘을 연결 고리로 젠더적 사유에 주목했던 철학자 소르 주아나(1648~1695년)는 이런 가설로 음식철학의 알고리즘 사유를 꿈꿨다. 지독한 남성 우월의 사유체계를 가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만약 요리를 했더라면, 그는 음식에 관해 더욱 많은 글을 썼을 것’이고, 그의 지적 유산은 인류의 음식문명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을 것이란 아쉬움을 《음식 철학》 저자인 캐롤린 코스마이어 교수는 1장 마지막에 묘비명처럼 새겨 넣었다. 그녀는 뉴욕 주립대 버팔로 캠퍼스(Professor of Philosophy at the University at Buffalo, State University of New York)의 철학 교수다
저자의 이런 생각 때문일까? 이 저서는 <음식철학> 분야에서 지난 20년간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캐롤린 코스메이어 교수의 《Making Sense of Taste: Food and Philosophy》 책이 2020년에 한국에 첫 번역됐다. 우리나라의 음식 담론에서 처음 만나는 <음식철학서>다. 먹방과 쿡방의 푸드 포르노, 맛과 가격 중심의 맛집 소개, 칼로리에 집중했던 산업화 시대 패스트푸드가 음식담론을 주도했던 시대에서 벗어날 시그널로 받아 들어진다. 음식을 미학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는 신호탄이다.
2020년은 [COVID-19]로 인류가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하는 언텍트의 뉴노멀 원년이다. 산업화 시대 생산성과 효율성 중심의 가치는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비욘드(beyond) 코로나는 일상의 음식 분야에서도 변곡점을 맞았다. 남성들이 부엌에서 셰프로 참여하고,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 앉아 맛을 이야기하는 달콤한 느린 일상을 즐기는 아날로그 타임을 선물 받았다. 저자가 <한국어판에 부쳐> 글에서 “맛은 미학적 감각이며 요리를 예술의 형태로 표현하고, 일상적 식사도 미학적 의미를 갖는다.”는 맥락도 비욘드 코로나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음식철학>은 음식 담론에서 마지막 남은 미지의 영역이다. 음식과학 영역은 산업화로 가장 발달했고, 음식 인문학과 미식(가스트로노미)은 출판계에서 한창 발굴 중이며, 음식 평론은 맛 중심으로 꽃을 활짝 피웠다. 최근의 음식인문학은 음식 경제사, 음식 역사까지 영토를 넓혀가는 중이다. 일본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에 재직 중인 아사쿠라 도시오(朝倉敏夫, 인류학 박사) 교수가 주도한 식과학부(Gastronomic Arts and Sciences)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학에서도 식과학부 같은 음식인문학부가 개설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식과학부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지식과 견해를 종합적으로 융합하여 <음식>에 관한 제반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학제적인 성격의 학부이다.
고대철학, 맛감각을 하위 배치,칸트와 계몽주의 거쳐, 현대철학의 미학으로 발전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싹을 틔운 서양 철학은 21세기에 들어서야 인간이 ‘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사유의 또 다른 형식으로서 음식을 철학의 고유한 연구 영역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저자는 2,500여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어떠한 이유에서 음식이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는지를 서술하면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철학사라는 세계사의 법정에 회부하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David M.Kaplan이 편집한 음식철학(The Philosophy of Food, 2011년출판)은 윤리학이나 미학이라는 16개의 개별적인 철학적 관점에서 음식과 철학 사이를 오가며, 다소 산만한 주장과 논의를 펼쳐 나간다. 반면 캐롤린 코스메이어 교수는 일관되게 음식과 감각이라는 단일 주제로 음식철학의 체계를 엮어내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칸트와 헤겔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서양 철학사의 <음식 철학 궁전>으로 초대해 차근차근 소개하며 독자들을 설득해 나간다.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1부에서 저자는 음식이 왜 철학의 중심에서 밀려 났는지를 감각의 서열에서 찾고 있다. 맛의 감각(미각과 후각)은 인간의 낮고, 저급한 쾌락의 속성으로 분류하는 고대 철학의 역사에서 뿌리 깊게 내리고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각과 청각을 ‘높은 감각’, 미각과 후각을 ‘낮은 감각’을 분류했다. 인간의 최고 능력인 지식과 도덕, 예술 행위는 시각과 청각으로 성취한다는 불변의 가설을 세운 고대 철학자들을 고발한 셈이다. 이들이 만들어 낸 형이상학적 가설은 현대 이전까지 맛(미각과 후각)은 아름다움의 대상으로도, 예술 작품으로도 평가 받지 못했다
4개 미각 뽑아낸 플라톤미각은 ‘신성한 뇌’에 거주하지 못한다
철학의 지적 전통을 세운 플라톤은 4개의 미각(쓰고, 달고, 시고, 짠맛)을 뽑아내는 지적 성과는 이뤘지만, 혀의 지각에 대해 악평을 서슴지 않았다. “혀의 지각들은 머리의 신성한 곳에 거주하지 않고, 지적인 영혼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화기관인 위에 대해 그는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육욕의 영혼을 위한 여물통”이라고 평가 절하하면서 미각의 타락성과 위험성을 경고했다. 소크라테스도 삶의 마지막 순간, 철학자는 음식과 술, 그리고 섹스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파이돈). 아리스토텔레스도 감각의 위계에 대해 보다 복잡한 관점을 제시했지만, 시각과 청각의 우월성과 고귀함에 집중한 철학적 관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지적 전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이런 철학적 전통은 오랜 시간 계속된다.
저자인 캐롤린 코스메이어 교수는 이같이 형이상학적 전통에서 한 발짝 성큼 나아간다. 남성은 감각을 다스릴 줄 아는 지성의 통제력을 갖췄고, 여성은 욕망과 쾌락과 짝을 이루는 감각 위계를 설명한 플라톤에 직격탄을 날렸다. 저자는 젠더적 추론으로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적 범주의 근본 토대에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 대립관계로 만들어 놓은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의 지적 전통에 남성은 우월한 존재이고, 여성을 폄하하는 철학적 주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라는 지적에 공감이 된다
맛은 여성과 짝을 이루는 ‘감각’‘음식 철학’ 사유의 불가능으로 만들어
요약하면 맛은 쾌락의 대상이며, 여성과 짝을 이루는 낮은 서열의 감각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전통 철학의 감각 서열이 젠더적 사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날카롭게 분석하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빗나간 것이라고 지적한다. 맛은 신체 감각과 쾌락의 비천함으로 가정해 버리면서 철학적 물음을 던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17~18세기 칸트와 볼테르, 현대 철학의 미학적 관점에서 미각이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품격을 갖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은유적인 맛의 의미와 함께 ‘감각적 지각의 과학’인 미학(aesthetics)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2부 <미학과 비미학적인 감각들> 편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어려워 쩔쩔매는 음식철학의 알고리즘을 일반인들도 이해 가능한 음식 언어로 서술한다. 캐롤린 코스메이어 교수가 <음식과 감각>이라는 주제를 칸트의 판단력 비판과 연관지어 서술하고 있는 대목에서 독자들은 책읽기를 멈추거나, 미로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40년간 칸트 철학을 연구한 권오상박사의 쉽고 친절한 우리말 번역은 <음식 철학>의 미로 속에서 아드리네의 실타래가 되어 줄 것으로 확신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철학사 강의>에서 유럽인들은 그리스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말했다. 로마 군인들이 아테네를 함락하고 마침내 지중해 문화권을 주도해 나갈 때, 로마인들에게 철학과 문학을 그리스 노예들이 가르쳤다. 이들은 호모의 시에서부터 플라톤의 공화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등을 로마의 귀족과 그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키케로의 서신집도 아테네에 유학 중이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돈을 좀 더 아껴 쓰고 늦잠 자는 버릇을 고쳐서 학문에 증진할 것을 권한 내용이다. 로마의 귀족 자제들은 이후 아테네를 직접 찾아가서 플라톤이 세웠던 아카데미아에서 심도 있는 학문을 했다.
유럽인, 그리스 단어만 들어도 가슴 벅차,Food Studies는 고유한 학문 영역의 새 개념
로마시대 그리스어가 라틴어와 같이 공식 언어가 된 후, 유럽은 생활 언어에서 라틴어 영향, 학문 분야에선 그리스어의 수혜를 받게 된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어로 학문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학문 분야를 지칭하는 라틴어 용어에 ‘s’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식 학문 용어의 용례를 답습한 해프닝이지만, 이런 전통은 영어권에서도 계속됐다. 경제학economics, 물리학 Physics , 형이상학 metaphysics, 윤리학 ethics에 각각 ‘s’자가 오늘날 떨어지지 않고 어미에 붙어 있다.
로마인에게서 시작된 그리스식 학문 용어의 혼동은 ‘음식’을 학문으로 다루고자 할 경우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영어 food studies를 우리말로 옮기면 음식학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study의 복수 형태를 취하고 있는 studies는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복수의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어처럼 학문명을 뜻하는 여성명사의 ‘s’를 지칭하지 않게 된다. 영어권 학자들이 food와 studies를 연결 짓게 된 것은 음식food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영역과 여러 학문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구조적 복합성을 염두에 둔 까닭이다. 대학이라는 학문 연구기관이 주도적으로 음식 food을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영어 단어 food studies에서 studies는 음식과 관련된 여러 인접 학문들을 지칭하는 복수개념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음식에 관한 연구가 오랜 학문적 전통을 지닌 물리학physics , 형이상학 metaphysics, 윤리학 ethics과 같이 독자적이면서도 고유한 학문 영역으로 21세기에 인식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food studies에서 studies가 고유한 학문을 의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음식이라는 주제는 사회과학, 인문학, 그리고 자연과학과 공학 모두를 아우르는 학제간의 Interdisciplinary 연구 영역 전반을 포괄하고 있다. 음식은 인류학의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되고 사회학, 고고학, 영양학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미국 퍼시픽 대학의 켄알베라 Ken Albala 교수의 분류 방식을 보자. 음식이라는 연구 주제는 실로 다양한 학문과 연결된다. 음식과 인류학, 음식과 사회학, 음식과 커뮤니케이션, 영양 인류학 Nutritional anthropology, 공공보건 영양 Public health nutrition, 음식과 고고학, 음식과 저널리즘, 음식과 문화사, 음식과 요리의 역사, 음식과 문학, 음식과 언어학, 음식과 신학, 음식과 예술, 음식과 영화, 음식과 TV, 음식과 미국학, 음식과 민속학, 음식과 박물관, 음식과 법률, 음식과 젠더, 음식과 조리 방법 그리고 경영학, 음식과 대중문화, 음식과 정의 그리고 권리, 음식과 민족, 음식과 동물의 권리, 음식과 감각, 음식과 농경, 음식과 윤리학과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어 질 수 있다.
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원과 캐임브리지대학원에서는 음식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론을 익히기 위해서는 캐롤린 코스메이어 교수의 저작을 반드시 숙독해야 한다. 더욱이 1999년에 저술된 이 저작물을 필적할만한 책이 20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점을 보면, 저자의 학문적 성과와 철학적 통찰에 감탄할 뿐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읽어가면서 그녀의 지적 통찰을 확인하게 되고, 음식 서가의 정중앙에 배치할만한 책으로 선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대학의 음식 관련 학과나 대학원, 음식 독서모임 등 다양한 분들의 세미나 자료로 활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료가 방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