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238185&PAGE_CD=N0006&utm_source=naver&utm_medium=newsstand&utm_campaign=naver_news&CMPT_CD=E0033M빨치산의 태평소 소리 좋아했던 미군, 국악의 전도사가 되다[이희용의 월드코리안 12] 국악 세계화의 물꼬 튼 '해의만(海義滿)'민족·국제 이희용(hoprave)▲가야금 타는 해의만만년의 해...
나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키에르케고어와 도스토엪스키를 실존주의자로 소개했다. 나는 키선생에 빠져서 그의 삶에 따라 살고 싶었다. 결혼도 않고 철학을 공부해서 신학 공부를 하 고 싶었던 것이다. 도선생에 대해서는 그동안 기억하는 것이 없다. 도선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지난 달에야 읽었고 감상문을 적어 담임 선생님께 뒤늦은 보고를 드리고 싶다. 키 선생에 대한 보고는 이미 제출(“슬픔: 또 하나의 실존적 범주”)했었다.
나는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도선생의 이 소설 책은 읽어본 어떤 철학 책 못지 않게 심오하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중심으로 빚어내는 인간 삶의 드라마가 다양하게 그리고 반성적으로 펼쳐진다. 돈과 명예 같은 공적 관계가 나타나고, 사랑, 증오, 시기, 질투 같은 내 적 전쟁이 발생하고, 살인과 법 같은 사회질서가 등장하면서도 종교와 신 같은 영적 세계에 닿아 있다. 하나의 소설책에 인간사의 거의 모든 주제가 극적으로 연결되어 펼쳐지면서 독자 가 빠져드는 공간을 이루어낸다.

한국어 번역판 표지
소설은 극적인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 둘째 아들 이반이 돋보인다. 신이 없다면 무엇이던 가능하다라고 믿는 이반은 신의 문제를 <대심문관>의 서사로 표현한다. 대심문관은 광야에서 기적, 신비, 권위를 요구하는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을 모두 거부하고 신앙의 자유를 선택했던 1500년 전의 예수가 에스파야에 다시 나타나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 의 자유를 설파하여 기존 질서의 가톨릭 교회를 불안하게 한다고 하여 화형하겠다고 선언한 다. 자유는 선과 악을 스스로 분별하고 그 선택에 대해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 무거운 짐이 고 불안과 고뇌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심문관 본인도 한 때 누구보다 성스러운 신심 으로 하느님을 숭배하였으나 가톨릭 질서를 존중하여 사목하는것이라고 술회한다. 예수는 아 무말도 없이 그에게 키스하고 대심문관은 예수를 풀어주며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
도선생의 소설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이 감동은 특정한 체계의 전제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 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포괄하는 아브라하믹 인간중심적 형이상학에서 감동적이다. 신 과 인간, 선과 악, 물질과 비물질 같은 이분법을 전제하는 세계에서 감동적이다. 그러나 유불 도의 음양론이나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라는 요한복음의 우주관계적 로 고스론에서는 달리 보인다.
도선생의 소설은 얼핏 19세기적 틀에 매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셋째 아들 알로샤나 스승 조시마 장노를 통해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인다. ‘대지에 입 맞추고 눈물 흘리라’라는 찬미를 하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대지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한다. 초월 적 신이 만물 속에 내재한다는 요한복음의 로고스론이 나타난다. 도선생은 알로샤를 통해 ‘신 -인간(God-man)’이라는 수직적 구도를 잠시 내려놓고, 그가 묘사한 생명에 대한 찬미를 ‘인 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적 장(Field)’으로 읽어내는 것 이다. 한 개인은 인류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한 사람을 사랑할 때 그의 안에 신의 모습이 회 복된다고 한다. 이렇게 구성된 우리는 지옥을 벗어난다.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과제, 의무, 필연이다. 아니면 죽음의 집에 빠진다는 것이다. 도선생의 실존주의가 선명하다.
202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