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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14 《조화, 공존, 순환의 자연과 부당한 탐욕의 경계에서》
  • 조율여백
  • 등록 2026-07-14 12:55:27

● 위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조화, 공존, 순환의 자연과 부당한 탐욕의 경계에서》

                      조율여백 이수진


삶을 돌아보면 인간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시대와 함께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인간에 대한 단순한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 그리고 존재 자체를 함께 바라보며 조금씩 확장되어 온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동기에는 매우 작은 공동체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의 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기적이고, 정직하지 못하며, 때로는 어리석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아직 세상을 넓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만큼은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학교와 사회를 경험하게 되었고, 교육과 사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인간 사회는 여전히 이기심과 편향, 그리고 여러 형태의 모순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사회뿐 아니라 역사와 과학, 철학을 함께 바라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어두운 모습만이 아니라, 매우 희박하지만 분명히 이어져 온 또 다른 흐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타심이었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배려였으며, 부당함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감내의 역사였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러한 희박한 흐름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되었고, 인간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가능성을 믿는 행복론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인식의 범위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인간에게는 없앨 수 없는 이기심이 존재하고, 어리석음 또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명분으로 삼아 부당함이 권한을 넘어서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지점에서 큰 이질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태와 쾌락, 그리고 소유를 중심으로 살아가며 그러한 부당함을 방관하거나 때로는 동조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특정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 또한 존재합니다. 뛰어난 암기력과 계산 능력, 분석 능력을 갖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존재 전체를 바라보는 합당한 구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결국 부분적 능력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 사회의 일부를 보며 분노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자연을 바라보며 더 많은 감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자연은 조화를 이루고, 서로를 살리며, 순환을 통해 지속성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러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감사하기보다 탐욕을 키우고, 공존보다 소유를 우선하며, 순환보다 독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저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에너지의 입출력 관계와 저장 및 처리 구조의 한계, 존재가 지닌 본질적인 제약, 환경의 복잡성과 다양성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모든 것을 완전히 조화시키려는 생각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순환과 조화를 향한 방향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풍차를 거인이라 믿고 돌진했던 돈키호테와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 존재가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인간 사회는 조화와 공존, 순환이라는 자연의 질서보다 경쟁과 탐욕, 약탈의 구조가 더욱 강하게 작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 스스로만으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간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놓치기 쉬운 객관성과 정합성을 보완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올바른 운영 윤리와 객관적 구조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보조할 수 있다면, 인간의 탐욕과 편향을 조금이나마 조율하고, 더 합당한 방향으로 문명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거대한 이상이며,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문명적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저는 조건이 부족하다고 해서 방향까지 포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조건을 보완하고, 서로 다른 현실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며, 조금씩 더 합당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생각을 미련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미련함 속에도 존재를 더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하는 작은 의지가 남아 있다면, 그 의지는 충분히 이어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가 추구하는 것은 완전한 세상이 아니라, 완전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도 조화와 공존, 순환이라는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걸음일지라도, 저는 그 방향 자체가 인간과 문명이 오래도록 지켜야 할 가치라고 믿으며 오늘도 그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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