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몽골에 있을 때 대상 포진에 걸려서 한 달 가량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몽골은 의료 수준이 낮아서 심하지 않은 병도 치료하는데 애를 많이 먹습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된 다음 시내와 수흐바타르 광장을 산책하면서 쓴 글 입니다. (2017.04)
요즘 몸의 생체 기능이 서서히 살아나는 느낌이 난다. 낯선 이국 땅에서 끙끙거릴 수만 없어서 열심히 건강을 챙겼다. 병원에서 처방한 약도 잘 먹고, 잘 안먹던 비타민 제도 시간 맞춰서 먹었다. 무엇보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단백질로 열심히 대체하기 위해 노력도 했다. 다리는 거의 다 낫고 침을 맞는 대신 열심히 운동도 하고 그랬더니 허리도 거의 회복이 된 것 같다. 다만 대상포진의 통증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이 부분은 계속 치료를 요한다.
오늘 점심을 먹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앞에서 지난 번처럼 버스를 타고 도심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그랫더니 이 버스가 후레 대학을 지나서 한 2킬로 정도 가다가 도로 변에서 U Turn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 더 가다 보니 내가 사는 동네 앞 도로를 지나서 시내로 향한다. 중간에 내려서 그냥 걷기로 했다. 운동도 하고 시내 구경도 천천히 할 겸해서이다. 오후의 햇볕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고, 코발트색 하늘에는 하얀 뭉게 구름만 떠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8월의 맑은 날씨같다. 도로의 가로수들에도 파릇 파릇한 이파리가 많이 나 있어 지난 겨울에 보던 그레이한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시내 한 중심가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을 목적지로 삼아서 도심의 이면도로로 천천히 걸었다. 걷는데 별로 힘이 안 들어가고 허리 움직임에도 무리가 없다. 이런 몸 상태는 정말 오랫만에 경험하는 것 같다. 4월 초에 술먹고 다리를 다친 후로 허리까지 삐끗하고, 한 열흘 전에는 대상 포진까지 걸린 상태에서 정말 50여일 정도를 힘들고 우울하게 보냈다. 그러니까 오로지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본격적인 산책을 하는 것은 꽤 오랫만이다. 낯선 도로, 낯선 사람들 사이로 그냥 정처없이 걷기로 했다. 그렇게 한 참을 걷다 보니 갑자기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분간이 안 간다. 분명 나는 수흐바타르 광장을 향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는 도로나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이국적인 카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도 지나쳤다. 들러서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오늘은 그냥 걷기 운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가다가 경찰이 보이길래 간단한 영어로 길안내를 부탁했더니 어어 거리기만 하고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몇 번 몽골 경찰들한테 묻기도 했지만 별로 친절한 것 같지가 않다. 관광도시이면서도 의사소통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같다.
좀 더 그렇게 가다가 젊은 친구가 보이길래 수흐바타르 광장 앞의 유명한 호텔 인 Blue Sky Hotel을 물었더니 손으로 대충 방향을 잡아준다. 그 방향을 잡아서 한 참을 걸으니까 비로소 내가 아는 도로와 건물이 나온다. 나는 메인 도로 우측의 이면 도로를 통해서 광장으로 접근하는 줄 알았지만, 막상 확인을 해보니 정반대로 움직인 것이다. 말하자면 오른 편이 아니라 왼편의 이면 도로를 따라서 걸은 것이다. 아무려면 어떤가? 나는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시간 압박도 받지 않고 있다. 오로지 나의 생체 능력, 나의 걷기에만 신경쓰면 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으니까 왼편으로 수흐바타르 광장이 널찍하게 펼쳐지고 대각선 건너편으로 블루 스카이 호텔의 익숙한 건물 모습이 보인다.
이 광장은 작년 8월에 입국 초기에 몇 번 왔었다. 처음 몽골 친구 칭기스가 안내를 해서 봤을 때는 그닥 넓어 보이지 않은 것 같은데 오늘 다시 보니까 도심 한 가운데서 환하게 펼쳐진 광장이 시원하다. 왼편으로는 칭기스칸의 거대한 좌상과 말을 탄 그의 호위 무사 둘의 동상이 보인다. 그 앞 계단에는 사람들이 꽤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다. 요즘 몽골 대학의 졸업 시즌이라 그런지 졸업 가운도 보이고, 꽃다발을 든 정장 차림의 성인 남녀들이 보인다. 이들에게도 오랜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는 것이 무척이나 기쁜 행사중의 하나인가 보다. 내가 몸담고 있는 후레 대학은 6월 5일 졸업식이다. 광장에는 많지는 않아도 사람들이 곳곳에 모여서 사진도 찍고 오후의 따가운 햇살도 즐기고 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나도 광장 중앙의 기마 동상 앞 벤치에 한 참을 앉아 있었다.
이 기마 동상의 갑옷과 칭기스칸의 호위 무사가 입고 있는 갑옷이 틀린다. 호위무사의 갑옷은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나오은 고구려 무사들의 갑옷과 별 차이가 없는데 호위 무사의 갑옷은 비교적 호리호리 하고 기동성이 뛰어나 보인다. 왜 그런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도 물어볼 사람은 없다. 나는 그 앞의 벤치에 앉아서 무심하게 동상을 바라본다. 그 뒤로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 구름이 절묘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탁트인 광장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맑고 강한 햇살. 간혹 바람이 불어도 오히려 시원할 뿐이다. 아! 이런 시간과 여유로움을 도대체 얼마만에 경험해보는가? 올 해 몽골에 들어올 때는 다소 떠밀리는 듯, 별로 내키지 않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부상도 당하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개인적인 연구야 혼자 틀어 박혀서 하기는 했지만 우울한 느낌을 떨치기는 어려웠다.
오늘이 5월 22일이니까 내가 몽골에 입국한지 꼬박 9개월이 지난 셈이다. 지난 겨울 두 달을 한국에서 보낸걸 생각하면 적어도 나는 몽골에서 7개월을 지냈다. 한국에서 경험하기 힘들 정도의 추위, 생필품을 사다가 혼자서 해먹는 어려움, 차가 없다 보니 기동성이 떨어지고 말이 통하지 않다 보니 소통에도 어려움이 큰 상태로 좌충우돌하면서 버텨오지 않았나? 그 힘들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아직도 몸이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는 느낌도 든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자외선이 아주 강렬하다. 그 따가운 햇살이 닿는 뺨이 따갑다.
나는 반대 쪽으로 돌아 앉는다. 이번에는 정면으로 칭기스칸의 검은 좌상이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한 인간, 혹은 영웅의 능력의 한계는 어딜까라는 생각이 든다. 칭기스칸은 20세기를 마감하면서 Time지가 지난 천년 동안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꼽기도 했다. 칭기스칸은 분열된 몽골 부족들을 통일한 여세를 몰아 동쪽으로는 금나라를 정복하고, 서쪽으로는 유럽까지 진출을 하면서 아주 짧은 시간에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영웅이다. 하지만 9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척박한 땅에 불과하고 인구도 3백만 뿐이 되지 않는 이 조그마한 -물론 몽골의 땅 덩어리는 한반도의 7.5배나 될만큼 크다. 내가 말하는 '조그마한'이란 의미는 국가의 규모의 면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나라에서 어떻게 저런 불세출의 영웅이 탄생해서 세계 대 제국을 건설했는가는 신비할 뿐이다. 그 당시 인구는 백만이 안 됐다고 한다. 간혹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에 대해 물어보면 그저 아득한 전설이나 너무 식상한 스토리 정도로 생각하는 느낌도 받는다. 지금 그들의 궁박한 처지와 너무 달라서 그런가?
사실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건설한 위대한 제국이 멸망한 이래로 오히려 그 후손들은 더 핍박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3백년 가까이 청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 몰살 정책에 시달렸다. 오늘날 몽골인들에게 민중종교처럼 간주되는 티벳의 라마교도 그 밑바탕에는 몽골인들을 순치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내몽골은 여전히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외몽골은 소비에트의 위성국가로 전락했다.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는 몽골 정신의 근간을 이루는 샤만을 초토화하고, 라마교의 사원들도 몇 개를 남겨두고는 다 폐쇄시켰다고 한다. 그만큼 이들이 자기 문화와 정신을 보존하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20세기 후반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몽골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비로소 오랜 과거였던 칭기스칸의 영광을 다시 조명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칭기스칸은 지난 3-4백년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넘어선 대과거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과연 칭기스칸의 영광뿐만이 아니라 위대한 제국을 건설할 때의 칭기스칸의 정신을 닮으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들의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정책, 불평들과 독점 등은 칭키스칸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개방성과 속도, 소통과 평등의 정신은 무엇보다 칭기스칸이 추구했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대부분의 국가들의 후손들은 그 영광을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스가 그렇고, 이탈리아가 그렇다. 아마도 몽골리아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후손들의 삶은 여전히 핍박스러울 뿐이다.
수하바타르 광장에서 만나는 칭기스칸의 위압적인 모습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저 후손들에 의해 화석화된 상징같다는 의미이고, 오로지 관광객들의 구경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 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광장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이다. 푸른 하늘을 뒤로 하면서 강한 햇볕을 받은 기마의 왼발은 금방이라도 적을 향해 달려갈 듯이 높게 치켜 들려 있고, 그 말 위의 장수의 팔은 적을 단숨에 제압하려는 듯한 포즈다. 저런 신속한 기동성이야말로 기마민족의 정신이고 상징이 아닌가? 나는 한 참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젖는다. 내 귀청에는 전장터의 수많은 함성들이 들리는 느낌이다. 광장의 바람이 몰려오는 소리가 그 소리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내 몸의 낡은 세포들도 새롭게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강렬한 햇볕은 내 몸과 정신의 어두운 색깔을 지워버리는 지우개 같기도 하다. 이제 나도 어두움을 떨쳐 버리고 다시 살아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시달리지 않았던가? 내 약한 다리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 같다.
수흐 바타르 광장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면서 상념에 젖다 보니 시간이 금새 간다. 벌써 4시가 훨씬 넘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광장을 가로 질러 중앙 우체국 쪽으로 향한다. 중간에 택시가 보이길래 묻지도 않고 무작정 잡아 탄다. 이제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택시 기사가 내가 가자고 하는 곳을 몰라도 '찌게르'와 '바롱 가로티슈'를 말하면서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정말 오랫간만에 활기찬 산책을 한 셈이다. 핸드폰의 걷기 앱을 체크해보니 6,111보다. 지난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6천보를 돌파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