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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서부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문화, 이오니아의 흔적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20 00:40:09
  • 수정 2026-07-20 02:05:52

리디아 왕국에 의해 정복된 이후의 이오니아 문화 및 민족에 대한 역사도 매우 중요하다 판단된다. 비록 로마에 흡수되었다 하였지만 그 잔존 세력은 로마의 지원을 받아 로마의 문화도 이식하면서 더 발전된 문화를 이룩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오니아 폴리스의 수장들이 이끄는 이오니아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고 로마 제국 아나톨리아 속주에서 벗어나 독립된 형태가 되었다. 이제 전체적인 아나톨리아 지역의 몰락은 기정사실이었고 로마와 아르메니아, 폰투스 왕국의 포위를 당하여 위축된 도시 국가들은 비잔틴 제국이 건국됨에 따라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B.C 1200년에서 546년 사이에 소아시아(현 터키 영토) 서부에 존재했던 리디아 왕국(Kingdom of Lydia)의 전성기 영토와 세력권, 출처 : Алексей Зён의 페이스북

이들은 이후 비잔틴 제국을 기반으로 활약한 20만에 이르는 이오니아 상단의 주축이 되었다. 그리고 1403년 이즈미르에서 벌어진 오스만투르크와의 마지막 항전을 끝으로 이오니아 도시 국가들의 역사는 사실상 종결되었다. 이오니아의 문화적 융성은 대륙 간의 전쟁에서 자주 배제되었고 그리스와의 관계를 자주 가짐에 따라 그리스 문명권에 속하게 되면서 평화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오니아에도 큰 위기가 발발하게 된다. 페르시아 전쟁이 벌어지게 된 계기는 이오니아가 페르시아 정부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자 그리스 폴리스들인 아테네가 개입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오니아 지역은 키루스 2세의 치세 때 페르시아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오니아 도시 국가들 중 철학자 탈레스(Talles)의 고향인 밀레토스 등이 중심이 되어 몇 가지 요인에 의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때 이오니아 폴리스들은 그리스 본토의 국가들에게도 만약 자신들의 반란이 실패한다면 페르시아가 이번에는 그리스 본토를 공격할 것이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스파르타를 비롯한 다른 도시들은 페르시아의 강한 군세와 군사 규모 등에 쉽게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아테네와 에레트리아(Eretria)가 지원을 하면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아테네가 당시 개입한 것은 밀레토스 등이 자신들과 혈통적 연계가 있는 도리아인의 주 종족이었기 때문이었던 것도 있지만 당시 아테네가 민주 정부로 전환한 상태에서 추방된 참주였던 히피아스(Hipias)를 페르시아가 보호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모든 시민들이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한 몫 챙기기 위해 아테네 귀족들이 전쟁을 부추기는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시민들의 위와 같은 선동을 통해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독촉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아테네의 지원은 전함 20척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이들은 사르디스를 공격해 키벨레(Cibele) 신전을 불태우기도 하지만 페르시아 기병대에 패하여 도주하고 말았다. 이후 이오니아 반란군은 키프로스와 헬레스폰토스(Hellesphontos) 일대에까지 폴리스들을 선동해 보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라테(Rate) 섬 해전에서 이미 주요 섬 국가들을 매수한 페르시아에게 간단히 패하여 진압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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