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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보석과 진주 이야기
  • 알렉세이정 칼럼리스트
  • 등록 2026-07-21 14:43:13

태국에 와서 진주를 자주보게 된다. 그동안 진주는 다이아몬드와 루비·사파이어 같은 유색(有色) 보석과 금(金)에 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 역시 귀하고 귀한 보석이다. 특히 진주는 양식(養殖)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물량이 많고 가격도 안정돼 있는 편이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담수 양식이 확대되는 것도 진주 공급이 늘어나는 주된 요인이다. 요즘에도 그런데 해상 실크로드가 이어주는 과거에는 더욱 귀했다. 인도양을 통과하는 아시아의 해상 실크로드를 두고 진주길이라 부르기도 했다. 육상 실크로드가 비단길이었다면 해상 실크로드는 진주길인 셈이다. 

태국의 진주 목걸이, 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당시 동쪽으로는 중국 진(秦)나라와 한(漢)나라가 있었고 서쪽으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가 있었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교역은 주변 바다와 인접한 열도와 어우러져 문화와 사상 그리고 인력과 물자 등의 활발한 교역을 이루는 계기가 되어 넓게 퍼져나갔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해양 네트워크의 구축으로 인해 외국인들이 들어와 거류지를 형성하기도 했으나 봉기와 학살로 인해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지역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반란 세력을 통해 극단적 행동을 하였으니 이 또한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진주에 관한 기록을 보니 조선 시대에는 경빈 김씨의 『사절복색자장요람(四節服色資粧要覽)』에 나오는 향낭과 주머니에 관한 기록이 있다.

 

“향낭은 항라 당저고리에서부터 초사 당저고리까지 다 찰 수 있고, 자라줌치는 뉴청은 자적 저고리에 차고, 백색은 춘추동에 다 찬다. 진주낭자는 궁중에서 제일 큰 명절인 탄일과 정초문안에 사용할 수 있다.”


주머니는 염랑과 귀주머니가 있다. 염랑은 주머니 모양이 둥근 것을 말하며, 귀주머니는 양옆이 모가 나있는 것을 말한다. 주머니는 주로 비단바탕에 길상무늬의 화려한 수를 놓았다.여기에는 오색의 술을 달아 그 모양을 더욱 아름답게 하였는데 사용한 천과 색, 부금 여부에 따라 신분의 존비·귀천·상하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조선 말의 유물로는 진주를 박아 만든 것이 있는데, 왕비가 패용하던 것이다. 이 진주 또한 동남아시아산일 확률이 높다.


더 오래된 것은 고고학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경주시 노서동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 있는데, 화롱형 구체에 영락을 매단 중공옥 77개를 연결하고 그 중앙에 비취곡옥을 수식한 것이다. 이 형식의 목걸이에 쓰인 옥에는 곡옥 · 환옥 · 대추형옥 · 다면옥 · 관옥 등이 있으며, 그 재료는 비취 · 유리 · 수정 · 마노 · 진주 등이다. 비취와 진주, 유리 등은 철저히 외래품이다. 태국에도 비취옥 산지가 있고 비취옥으로 불상도 만든다. 진주는 동남아시아에서 산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 따라서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진주는 동남아시아산인 것이 맞다. 아주 중요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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