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_밧_떨커리. 달_녹두죽, 밧_쌀밥, 떨커리_채소 반찬. 네팔 산중에서 쌀밥은 귀한 음식이다.
[에세이철학 네트워크=김홍성 ]
장편소설_칸첸중가_013_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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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손전등을 들고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보니 엉망이었다. 꽁꽁 언 똥오줌이 변기에 차고 넘쳐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운무를 헤치고 멀찍이 나가 눈밭에 쪼그리고 앉았다. 전지를 아끼려고 손전등을 끄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다가오는 손전등 불빛이 뿌옇게 보였다. 나는 손전등을 다시 켜서 원을 그려 보였다. ‘여기는 이미 내가 차지했다. 너는 다른 데로 가라.’는 뜻인 줄 그쪽에서도 알았는지, 그쪽 손전등 불빛의 각도가 꺾였다. 운무, 어둠, 고요……. 산등성 너머에서 치솟는 바람 소리가 음산하더니 멀지 않은 곳에서 ‘뿌지직’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와 다시 침상에 누웠는데 잠이 안 왔다. 30분쯤 지났을까? 아니, 넉넉잡고 한 시간쯤 지나자, 산장의 높다란 천장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서 햇살이 운무를 헤집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청년들이 산장을 빠져나가는 기척이 들렸다. 어젯밤, 요시부미로부터 그의 일행 중 한 명이 고산병 증세가 심해서 날이 밝으면 바로 하산할 예정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자기 전에 작별 인사를 나누었지만, 나도 침낭에서 빠져나와 그들을 따라 나갔다. 그들은 벌써 산장 마당에서 오솔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맨 뒤에 가던 요시부미가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는 손을 흔들었고, 나는 합장으로 답례했다.
동쪽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마당에 햇살이 퍼진 8시쯤에야 산장을 나섰다. 하산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서 산장 외벽에 세워둔 여러 개의 대나무 지팡이 중 하나를 챙겨 들었다. 길은 파란 신우대 숲 사이로 나 있었다. 걷기 좋았다. 신우대 숲에서 목에 달린 쇠 방울을 흔들며 풀을 뜯는 검은 야크를 만나기도 했다. 고산에 사는 소의 일종인 야크는 덩치만 컸지, 겁이 많았다. 눈만 마주쳐도 뎅그렁뎅그렁 황급한 방울 소리를 남기고 숲속으로 달아났다.
오솔길 옆 샘가에서 물을 마셨고, 먼 산과 흰 구름이 보이는 산굽이에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한참씩 쉬기도 했다. 그 사이 영국팀이 지나갔다. 반 시간쯤 후에는 영국팀의 포터들이 지나갔다.
골짜기 건너편 산 중턱에 마을이 보인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꽤 넓은 경작지 가운데 룽따가 펄럭이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밭에는 군데군데 파릇한 농작물과 김매는 농부들도 보였다. 지도를 보니 사만덴(SAMANDEN) 마을이 그 마을 임이 분명했다.
산꼭대기는 아직 겨울인데 마을은 봄이었다. 새빨간 랄리구라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노란 나비 한 쌍이 파밭 위를 날고 있었다. 갈림길이 나오고 골케이의 텍(TEK) 호텔까지 2백 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팻말이 보였다.
왼쪽 길로 가면 정부가 운영하는 진짜 호텔이 있을 것 같아,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서양 청년이 숲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열흘 전부터 텍 호텔(*이름만 호텔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식 호텔이 아니다. 현지인들은 나그네들의 허름한 숙소도 호텔이라고 불렀다) 에 묵고 있는 존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웃는 모습이 하도 천진해서 몇 살이냐고 물어보니까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했다.
점심도 먹을 겸 존이 묵는 텍 호텔로 갔다. 텍 호텔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산비탈 양지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 둘, 며느리 둘, 딸 셋, 손자 한 명을 둔 노부부가 주인이었다.
손님방은 모두 네 개. 창문으로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 두 개는 이미 손님이 들었다. 하나는 존, 다른 하나는 어제 다르질링에 장을 보러 나간 독일 청년이 장기 체류 중이라고 했다. 빈방 둘은 각각 나무 침대가 두 개씩 있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호텔은 개울 하류 쪽으로 멀찍이 보였다. 멋을 한껏 냈지만, 자연과의 조화를 잃어서 생경해 보이는 스위스풍의 건물로 영국팀이 줄지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텍 호텔의 점심 메뉴는 달밧떨커리, 떨커리(채소 반찬)로 나온 음식은 감자를 볶을 때 커리를 넣어 노랗게 졸였다. 맛있었다. 마야(18세), 찬드라(16세), 꼬말라(12세) 세 자매가 부엌을 겸한 거실 창문에 매달려 밥 먹는 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봤다. 작은며느리 락시미(20세)도 물동이를 이고서 지나가다가 들여다보았다.
오후 2시. 람만을 향해서 출발. 존이 배웅해 준다며 따라나섰다. 키 큰 금송 숲 샛길을 타박타박 걷자니 노래가 절로 나왔다. 존은 내 노래를 듣기보다 자기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는 내년에 대학에 가서 자연 과학을 공부한 후 특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 관찰 학교 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어울리는 직업일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다.
오전에 산비탈에서 내려다보았던 사만딘 마을을 지나 람만 지역에 들어설 즈음 말 세 마리를 몰고 오는 청년 셋을 만났다. 한 명은 텍 호텔의 둘째 아들이고, 다른 두 명은 팔루트 산장의 산장지기와 그의 동생이었다. 셋 다 검은 고무장화를 신었다. 고무장화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농부들이나 산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장화를 즐겨 신는다. 그들이 길섶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중에 길 저쪽에서 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진 땅땅한 체구의 사내들이었다. 그들은 텍 호텔의 둘째 아들과 구면인지 반갑게 인사하며 짐을 내려놓았다.
그들의 짐은 쌀이었다. 텍 호텔의 둘째 아들에 의하면 이들은 산 너머 네팔 마을 일람에서 쌀이나 감자를 지고 와서 목재로 바꿔서 돌아가는데 80kg씩 짊어지고 하루 만에 산길을 1백 리씩 걷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이 동네 사람들의 표정을 보아 전혀 과장된 말 같지 않았다.
<</span>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