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령 아메리카 또는 러시아령 알래스카(Русская Америкa)는 러시아 제국인 로마노프 왕조가 1733년부터 1867년까지 통치했던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지방에 만든 식민지이다. 이 지역은 현재 미국의 알래스카 주에 속하지만 알래스카를 처음 발견한 측은 러시아이다. 러시아령 아메리카는 공식적인 합병이 요청되는 1799년까지 차르의 명령이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러시아의 영토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1799년 러시아령 아메리카 회사 설립 이후 알래스카에 대한 독점권을 획득했고 러시아 정교회에도 기독교에 대한 포교 허가령이 내려졌다. 또한 러시아는 알래스카 지역 뿐 아니라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포트 로스에도 정착촌을 건설했지만 알래스카를 팔기 이전인 1840년대 철수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1867년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직후 출판된 역사적인 지도인 ‘콜턴의 알래스카 영토 지도(Colton's Map of the Territory of Alaska)’, 출처 : Wikimedia Commons
우선 러시아 출신의 유럽인들이 알래스카를 최초로 정착했던 기록은 1648년 세묜 데즈네프(Семён Дежнев)가 콜리마(Kolima) 강에서 출발하여 북극해를 가로질렀고 아나디리(Анадыр) 강의 하구에 도착한 것에서 나타난다. 이는 세묜 데즈네프(Семён Дежнев)가 당시 차르였던 표도르 3세에게 보냈던 편지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서들에서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혼혈과 마찬가지로 당시 탐험하여 정착했던 러시아 인의 후손들은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기 전까지 러시아령 아메리카의 최초의 시민이 되었던 셈이다. 그들 탐험대 중 일부가 알래스카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그들 자체가 알래스카에 정착했다는 기록은 없다.
데즈네프의 탐험은 러시아 중앙 정부로부터 보고가 도달되지 않았고, 단지 시베리아가 북아메리카랑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문점만 하나 남기고 철수했다. 이에 1725년에 표트르 1세가 탐험을 한 번 더 부탁하려 했지만 데즈네프는 사망한 후였다. 러시아인들이 이와 같이 빠른 속도로 드넓은 시베리아를 정복해 나갔던 이유는 바로 여우와 수달과 담비 같은 동물들의 모피를 얻기 위해서였다. 겨울이 길어 추운 날이 많았던 러시아에서 담비나 여우 가죽으로 만든 모피는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고급 상품으로 여겨졌다. 1582년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의 코사크 군이 시비르 칸국을 정복했고 수많은 모피들을 노획하여 당시 차르였던 이반 4세에게 담비와 여우의 모피들 수만 장을 바쳤다.
수많은 모피들을 보고 감탄한 이반 4세는 시비르 칸국을 정복한 러시아군 사령관인 예르마크가 예전에 저질렀던 약탈죄를 비롯해 코사크 군 전원을 사면했다. 이렇게 시베리아 원주민들을 정복해가면서 얻은 모피들은 러시아의 국가 경제에서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1623년 시베리아의 러시아인 관리들이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서에 의하면 검은 여우 모피 두 장의 가격은 110루블인데, 그 돈으로는 말 10마리와 암소 20마리 및 100에이커의 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1650년대에 이르면 러시아는 국가 수익의 최대 30% 가량을 모피 무역으로 충당할 정도였으니 그 가치는 실로 막대했다. 그래서 시베리아 정복에 나섰던 러시아 인들은 모피를 지칭하여, “털이 달린 황금”이라고 불렀다.
1598년에서 1613년 동안, 러시아는 제위 계승을 놓고 러시아 동란 시대라는 최악의 내전을 맞이할 때 시베리아에서 얻은 모피로 인한 막대한 수익으로 인해 정부가 파산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아울러 모피는 러시아와 그 외의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선물이 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1595년 러시아는 신성로마제국에 다람쥐 모피 33만 장과 담비 모피 6만 장을 선물로 보냈고, 1635년 오스만투르크에는 1만 루블의 모피를 휴전 협상에 사용할 용도의 선물로 보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의 과도한 모피 확보를 위해 야생동물들이 희생되어 개체수가 줄어들자 알래스카와 북미 대륙에까지 진출했는데 그러한 이유는 바로 모피를 얻기 위해서였다. 알래스카가 아시아가 아닌 북미 대륙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러시아 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령 알래스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알래스카가 아니라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미국의 캘리포니아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미국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기 전까지 러시아령 알래스카는 곧 러시아령 아메리카와 같은 의미가 되었었던 것이다. Alaska(Аляска)라는 명칭은 러시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는 시기에 “반도”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알류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섬 주민인 알류트 족들에게 있어서 거꾸로 알래스카 본토를 표현하는 명칭이었다. 알류트 언어를 직역하면 “바다의 움직임이 향하고 있는 곳에 있는 것(Object to which the action of the sea is directed)”이라는 뜻이다. 실제 알래스카의 본토는 알류트 족이 기거하는 알류샨 열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알래스카 일대의 주요 해류인 북태평양 해류는 서쪽의 알류샨 열도에서 동쪽의 알래스카 본토 방면으로 흐르고 있어 알류트 족들의 표현이 비교적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원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베링 육교를 통해 알래스카로 유입된 이후로 상당수 부족들이 동남쪽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미시시피 문화와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지역의 문명, 안데스 문명 등을 건설하며 크게 번성했지만 알래스카에 남아 있던 원주민들은 씨족 사회를 이루며 거주하고 있었고 어떠한 문명적인 형태나 국가적인 틀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17세기부터 러시아가 침공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에서 상당수의 모피 장사치들이 알래스카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령 아메리카로서 러시아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모피 장사치들은 정복자라는 허명을 이용하여 온갖 착취를 일삼았는데 알류트 족들을 인질로 삼아서 농노처럼 부려먹었고, 알류트 족들이 이에 저항하면 그들의 생존 수단인 보트를 파괴시켜 거주 환경 자체를 없애버리는 행패를 일삼았으며 알류샨 지역과 알래스카 서부지역의 해상 동물을 무더기로 남획해갔다. 더불어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를 다수 섬멸시켰던 전염병 문제는 알래스카를 비롯한 브리티시 콜롬비아, 캘리포니아 등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알류트 족의 80% 가량이 러시아 인들을 통해 들어온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이후 러시아의 동진은 계속해서 가속화되었는데 19세기 들어서 알래스카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알래스카 전역을 형식적으로나마 차지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인이 해안 지역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내륙 지역은 장악하지 못했고 단순히 해안 지역을 지배하는 종주권을 인정받는 수준에 머물렀으며 러시아가 원주민들과의 전쟁에서 매번 우위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내륙의 틀링깃 족과 세금 문제로 장시간 전쟁을 벌였지만 이들은 이누이트 전사 집단이라 매우 용맹했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사실 스페인과 같이 대규모 병력으로 공격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 우선 유럽 러시아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고 이주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데다 당시에 비행기 같은 수송 교통이 없었고 시베리아 철도도 설치되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려면 상당한 시일과 예산이 낭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간 베링 해협에서 배로 갈아타야 되는 부분도 있어 매우 험난했다.
크림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던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미국이 미화 720만 달러를 주고 1867년에 구입했으며 이로써 러시아의 아메리카 지배를 끝나게 된다.